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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Dec 23. 2022

시어머니의 부엌

산다는 건, 먹고 치우는 것




손바닥만 한 개척교회 위에 딸린, 세 개의 방에는 아홉 명의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자다가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누워있는 다리 사이를 잘 찾아 밟고 나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두 사람 앉으면 알맞은 밥상에서 아홉 명이 식사를 하려면, 우선순위와 질서, 양보가 있어야 합니다. 뜨거운 물은커녕 찬물도 잘 나오지 않는 엉터리 부엌이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쌀값 반찬값 벌 수 있는 일거리만 있으면 족했습니다. 삼시세끼 식구대로 밥상을 차려내는 것쯤은 수고로 여기지 않으셨어요. 시부모님, 시동생과 그 아들, 부부와 삼 남매(그중 남편이 둘째예요)가 먹을, 밥을 하는 게 어머니의 사명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장의자가 여섯 개 놓인 개척 교회의 목사님이었습니다. 모여든 이들도 살기 빠듯한 형편인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어머니는 주일마다 점심을 준비하셨습니다. 교회에 크고 작은 모임이며 행사마다 어머니는 걸맞은 음식들을 차려내셨어요. 나중에 장의자 개수가 늘었지만 교인 수도 따라서 늘지는 않았습니다.     


연애 시절 돈이 없던 우리는, 밖에서 만나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지면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물론 그곳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살림이 차곡하게 쌓인) 부엌에는 언제나 밥과 반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99세까지 사셨고, 백일 된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어머니의 시동생은 그 애가 고등학생이 돼서야 집을 얻어 나갔습니다. 그분들이 아직 같이 살 때, (결혼 후 일을 하는 딸 대신) 외손주 둘을 맡으셨고, 장성할 때까지 키우셨어요.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이 먹고살았는지. 어머니는 늘 하나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숫기 없고 말수 적은 어머니는,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좋아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맛있을까?' 언제나 궁리십니다. 이제는 좀 살살하셔도 좋으련만. 여전히 계절마다 나물을 해다 말리고, 각종 장아찌와 효소들을 담그세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고, 김치를 종류별로 하고 또 하십니다. 김치를 먹기 위해 담그시는 건지, 담그기 위해 드시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루는 어머니가 아버지께     

"천국에 갔는데, 하나님이 '너는 뭐 하다가 왔냐' 물어보시면 나는 뭐라고 하지? 나는 전도 한 사람도 못 하고, 기도도 많이 못 하고, 말씀도 모르는데... 평생, 밥 밖에 한 게 없네!"     

하셨대요.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밥 하다가 왔다고 그래. 밥 하다 왔다고."

그러셨답니다.     


어머니의 밥은 배만 불리는 한 끼가 아니었어요. 아프고 힘든 교인들에게 얼른 차려 주는 위로였습니다. 가난에 시달리는 가족들에게 퍼주는 미안함이었어요. 먹고 한숨 자고 나면 기력이 솟아나는 보약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머니 댁에 갔던 어느 날이에요. 차려주신 점심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어머니가 짧은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어요.     


“인생은, 밥 해 먹고 치우는 게 다야. 삼 시 세끼 만들어서 먹고, 그거 치우다 보면 세월이 가는 거야. 사람 사는 게, 별 거 없어.”     


휴대폰 터치 몇 번이면, 어떤 메뉴든 집으로 가져다주는 세상입니다. 밀키트나 간편식이 어찌나 잘 나오는지, 그릇에 부어 데우기만 하면 요리가 돼요. 우리 동네에도 옆 동네에도 넘쳐나는 것이 배달 맛집이고, 괜찮은 반찬가게가 흔하고 흔합니다.     


나는 그럴듯한 한창 차림을 만들어 낼 솜씨도 없고, 살림 손도 작습니다. 식구 수에 비해 작은 용량의 2도어 냉장고를 쓰는, 소꿉놀이 스케일의 주부예요. '남이 해준 음식으로 돌밥(돌아서면 밥)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틈만 나면 잔머리를 데굴거립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머니 말씀을 떠올라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엽니다. 밥이 대충이면 인생도 대충이 될까, 어머니의 정성을 흉내 내 보는 것이죠.     


예수님은 물고기 다섯 마리와 떡 두 덩이로, 그분을 따르는 수 천 수만의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천국이야기만큼 밥 한 끼가 절실함을 헤아려주십니다. 부활 이후 제자들을 찾아가셨을 때도, 물고기를 잡느라 허기진 그들의 먹을 것부터 챙기셨어요. 밥 먹는 일을 복음보다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차리신 상은, 힘든 하루를 살게 한 힘이었습니다. 사는 게 어려워도 꾸역꾸역 버티게 해 준 사랑이었어요.     


그러니 천국에 가서     

"주님 주신 마음으로 밥을 했습니다." 하면,

"잘했다" 칭찬을 받지 않으실까요.     

맛있게 먹고 이제는 편히 쉬라고, 크게 한상 베풀어주실 겁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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