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척으로 가세요.

삼척으로 갈까, 백수로 남을까.

by 파사르


“파사르, 삼척.”


신입직원 교육이 끝나던 날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단어가 껴있었다, ‘삼척’.


아무래도 최종합격자 발표날, 엄마한테 했던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엄마, 이 회사는 전국구야. (포털사이트를 뒤지며) 어, 삼척이 있네. 내가 여기 갈 수도 있는 거야. 엄마.”

“삼척이 어디냐?”

“강원도래”

“오메오메, 거기 가면 다시 올 수는 있냐?”

“아직 모르지, 근데 설마 여길 보내겠어. 광주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가.”


삼척까지는, 직행으로 가는 교통수단이 없어 환승을 해야 한다. 어찌저찌 자차로 운전해간다면 비행기를 타고 일본 홋카이도를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버스나 기차로 환승해서 간다면 인천에서 태국을 가도 남을 만큼 넉넉한 시간이 걸린다. 이럴 거면 아주 해외로 보내버리지 그냥. 맥주랑 망고라도 실컷 먹게.


삼척으로 발령받은 또다른 신입직원은 주변인들을 향해 손으로 엑스자를 그려보며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마음이 곧 내 마음이었다. 삼척으로의 발령은 마치, 너를 유배지(삼척)으로 보내버리겠다는 일종의 외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없더라도 말이다. 얼굴 표정이 차게 굳었지만 애써 평온을 찾으려 애쓰며 일주일간 동고동락한 동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광주에 사는 내가 삼척에 가는 것을 두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모두가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도심 근처에 위치한 지사에 배정받은 사람들은 표정이 밝았다. 어떤 이는 교육기간 내내 집에서 먼 곳으로 발령받으면 퇴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더니만 집 근처로 발령을 받자 침울한 표정을 한 이에게 다가가 발령지를 묻고, 또 자신의 발령지를 알려줬다. 불행에 빠진 이는 “아, 네. 축하드려요.” 그 한 마디를 했다. 그는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어떤 이는 자리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여태까지 노력해 이룬 것들을 한순간에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게 서러웠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입사 포기를 했고, 어떤 이들은 며칠 더 출근을 해보다가 퇴사를 했다.

이쯤되면, 삼척이라는 곳에 날 던져 넣은(?) 이들의 의도를 따져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혹시, 퇴사를 하라는 건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삼척을 가더라도 쉽게 퇴사를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내가 만만한가?'


아, 일단 피해의식은 넣어두고, 내가 들은 단어가 삼척이 맞는지부터 다시 한번 확인해야했다. 발령지를 호명할 때 담당자의 발음이 불분명했는데, ‘삼천포’였던 것 같기도 하고, ‘사천’인 것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선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톡방을 통해 공유된 공문을 다시 들여다 봤다.


‘삼척지사, 파사르’


그렇다. 담당자의 발음은 정확했다.

공문 속에 반듯하게 새겨진 활자들은 그 자리에 단단히 박혀, 더는 수정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삼천포니 사천이니 하는 내 희망 회로를 말끔히 밀어내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고있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체, ‘삼척’. 그건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결정된 사실을 받아들이고 ‘가는 것’과 ‘가지 않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뭐, 삼척으로 가라면 갈 수 있다. 그곳을 가는 게 태국을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래봐야 한국이다. 여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름 30리터만 있으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문제는 급여였다. 정규직이긴 하지만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돈을 벌려고 적지 않은 나이에 삼척까지 가는 게 무모하고 어리석고, ‘쪽팔린’ 선택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그 나이에, 그 돈 벌겠다고, ‘삼척’까지 가냐.

내 마음에서 그런 소리가 빙빙 울려 퍼졌지만, 실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삼척엔 가지 않겠다고 엑스표를 그려보이던 이가, 삼척에 날 보낸 이들이, 그리고 삼척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이. 여태 축적해 온 현실의 감각이 그 순간 선뜩하게 빛났다. 30살이 되어 정규직이 된 나에게, 때를 잃은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익숙했다. 내가 괜찮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관계지향적 사고가 바탕이 되는 한국 문화에서, 조금 늦게 회사와 관계를 맺고, 조금 늦게 가족을 꾸린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 관계를 맺는 능력이 떨어지는, 하자 있는 인간으로 비쳐지기 십상이었다. 하자품인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아득바득 애 써왔는데, 다시 하자품이 아님을 증명해야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었다.


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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