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운전 6시간째.
차는 덜컹거리며 대관령을 넘어가고 있다.
바람이 차창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삼척, 그런 곳 가고 싶지도 않았다.
더욱이 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등 떠밀려 가는 모양새로는.
그래도 꾸역꾸역 차를 몰아 삼척에 도착했다. 삼척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으로는 삼척에 가지 않을 이유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얼핏 덤덤하고 독립적인 사람의 기개가 있어 보이지만 나로서는 꽤나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동기였다. 불도저나, 개척자, 모험가와 같은 단호하고 굳센 마음이 있어서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저,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서 하고 싶은 선택을 한 거니까. 하지만 나는 소심한 야망가다. 그래서 기어코, 삼척에 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손 내밀었다. 내 마음을 외면하고, 이내 타이르듯 다른 패들을 손에 그러쥐었다. 원하는 글을 쓸 시간적 여유, 강원도 오지를 여행할 기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 멀어질 유일한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멀어지고 싶었다. 집에서 나는 겉돌았다. 나의 부모가 나를 '별난 아이'로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는 전쟁 직후에 태어났다. 그때엔 연탄도, 보일러도 없었으니, 겨울의 추위가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엄마의 손등을 매일 트게 했을 것이다. 고약한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헛간에서 밤을 새우는 나의 아빠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부모는 자식이 집에서 가만히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돌보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랬다. 끔찍이도 바랬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가진 것이 없던 나의 부모는 겁이 많았다. 그 겁이 종종 자식들을 집어삼켰다. 그래서 '별난 나'는, 어릴 적부터 너무 가고 싶던 외국을 가기 위해 정부 국제교류프로그램을 지원했고, 서류와 면접에 합격하여 2주간의 해외탐방 기회를 얻었으나, 가족들의 이해할 수 없는 반대와 맞서야 했고, 취미로 외국어나 악기를 배우는 걸 들키는 순간, 나는 별난 아이가 되어 뿔난 부모를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20대 후반 무렵, 정말로 별난 사람이 되어 취업을 슬금슬금 피했다.
-말레이시아에 해외 취업을 해볼까 싶어 온갖 정보를 다 섭렵했다.
-청년농부를 해볼까 싶어 식물과 허브에 빠져 살았다.
-비누공방을 해볼까 싶어 책을 사서 읽고, 비누를 만들고, 교육을 받았다.
-글을 써보겠다며, 공모전에 도전하고, 극작가 수업을 들었다.
-코로나로 콘텐츠의 수요가 급등했을 땐, 유튜버를 해볼까 싶어 기관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저 중에 제대로 시작한 것이 단 한 개도 없다.
무서운 일이었다. 머리는 계속 생각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한참을 꿈만 꾸다, 단물이 다 빠진 망상에 지친 나는 결국 나는 어느 회사의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부모가 바라는 대로 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점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모는 '너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나에게서 손을 뗐다. 그즈음, 나는 두려울 게 없었다. 몸 술길 곳 없는 사파리에서 사자나 하이에나 눈에 띄어 잡아먹히지 않도록 나무 위로 몸을 피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켜켜이 쌓인 삶의 불안으로 연인에게서 안정감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관계는 점점 멀어지며 나의 형편없는 내면의 상태를 오롯이 지켜보며 절망해야 했다. 또 다른 실패였다. 연애까지 실패했다고 느끼자 실패의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광주를 벗어나면 그 모든 게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졌다. 수십 년간 부모님 싸움을 직관하고 중재하던 루틴과, 내게 지워진 딸이라는 역할놀이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더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었고,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더는 버텨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제 그 많던 힘을 다 써버린 걸까. 고작 서른두 살인데. 그렇게 나의 연약함과 볼품없음만을 나날이 확인받던 중, 삼척에 가게 된 것이다. 가족이 없어도, 남자가 없어도 괜찮으니 그저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 열망이 오랜 세월,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나를 일으켜 여기, 삼척으로 오게 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리고 삼척에 간지 얼마 안 되어 더는 나에 대한 마음이 없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그만두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다른 거 같다며, 나를 놓아준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는 그 말들이 심장을 긁었다.
그렇게 떠나오고 싶었던 것들에게서 더는 손 쓸 수 없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아, 내 인생 뭐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