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나다.
삼척이 초고령지역이라는 것이 체감되는 장소는 의외로 ‘카페’이다.
소위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카페’에 젊은이들은 없고 어르신들만 있기 때문이다. 체인 카페든, 개인이 운영하는 감성 카페든, 문을 열고 딱 들어서는 순간 그 넓은 매장에 온통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자연스레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히 음료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바다를 보다 자리를 뜬다. 어르신들이 떠난 자리는 늘 깔끔하다. 빈 잔이 놓인 트레이를 기꺼이 1층으로 가져다 놓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의자를 반듯하게 정리한다. 카페를 이용하는 그 모든 과정들을 여러 번 반복해온 듯 자연스럽다.
70대 후반 혹은 8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나의 부모를 떠올린다.
10년 전 쯤엔가, 한번은 엄마가 롯데리아를 알은 체 했다. 엄마는 공공근로 일을 하다 알게 된 이모랑 롯데리아에 갔다고 했다. 나는 놀라서 햄버거를 먹었냐고 했고, 엄마는 자랑하듯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이모가 몇 번이나 롯데리아에 데려가서 커피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줬다고. '아, 롯데리아에서 커피도 팔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롯데리아 커피를 두어잔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녀들을 상상했다. 엄마에게 커피를 사준 그녀가 참 고마웠고,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던 그 이야기에 마음이 저렸다. 엄마는 지금도 카페에서 주문을 할 줄 모른다.
나의 부모는 내 또래 부모들에 비해 나이가 한참 많다. 흔히 그렇듯, 시골에서 자란 그들은 배움이 짧았고, 급격한 현대화를 겪은 도시 생활에서 끝없이 고통받았다. 엄마는 동사무소에 뭔가를 써내야할 때마다 자신의 어설픈 글씨체가 부끄러워 종이를 들고 집에 와 나에게 대신 써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글씨가 기울든 삐뚤든 아무도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공사장 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며 험한 말만 주고받던 아빠는 자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이면서도, 젊은 상담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통화 도중 버럭버럭 화를 했다. 나는 아빠가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담원이 불쌍했다. 동사무소든, 상담원이든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똑똑하고, 빠릿한 젊은 사람이었다. 나의 부모는 기가 죽어있거나, 무시당하지 않으려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런 부모를 답답해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삼척에 있었더라면, 기죽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레 나이들어 갔을까. 커피 주문쯤은 아무렇지 않게 할 줄 아는 노인이 되어있었을까. 이게 내가 자유롭게 카페를 드나드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다변화하는 도시의 생김새에 경쟁하듯 적응해왔다.
남들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컴퓨터로 세상을 구경하고, 스마트폰으로 온갖 일처리를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해외여행을 하겠다며 아득바득 애를 썼다. 그 모든 걸,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내야했던 나는, 성질을 부리며 그들에게 스마트폰으로 돈을 보내는 법을 가르쳤고, 그 다음으로 사진을 보내는 법, 티맵을 보는 법을 가르쳤다. 그때 나는 내가 그들의 기댈 곳이라는 사실에 지쳐버렸지만, 부모는 기뻐했다. 엄마는 "그 언니가 벌써 돈을 보냈냐며 놀래더라니까. 나보다 어려도 다 못 해. 언제 은행까지 가. 집에서 보내버려야지." 이 모든 게 딸 덕분이라며, 늘 고마워했다.
물론 부모가 배우려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일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는 법도 알려주면, 언젠가 스스로 커피를 주문하고, 시럽을 타 마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나는 무더운 여름날이면 종종 집밖으로 나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와 냉장고에 넣어놨다. 아빠가 유난히 커피를 좋아했다. 아빠는 늦은 오후 땀에 젖은 모습으로 나타나, 냉장고 안에 든 커피를 발견하고는 "이게 웬 커피야!" 하며 예외없이 기뻐했다. 늘 불행으로 가득 찬 아빠의 몸에서 흘러나온 몇 안 되는 기쁨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날이 더울 때마다 나는 카페로 향했다.
삼척에서 나는 이방인이 된다. 도시에서 이방인처럼 헤매던 나의 부모처럼, 나 역시 이 곳을 헤매느라 안간힘을 쓴다. 도시의 카페는 때때로 조용하지만, 삼척의 카페에서 조용해지려는 욕심은 한낱 치기일뿐이다. 헤드셋 틈으로도 마구 파고드는 대화소리에 정신이 없어지고 짜증이 솟구칠 때 즈음, '아, 내가 이방인이지. 여기는 이게 자연스러운 건데'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쓴다. 그러고나서 (핸드폰을 보며) 마음을 다른 데 돌리면 카페는 어느샌가 조용해진다. 어르신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5시이기 때문이다.
오후 5시, 카페엔 나 뿐이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이 조금 어색한 이방인 젊은이는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다시 혼자 글쓰기에 열중한다. 이 공간에서 젊은 날의 목표 달성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평안을 얻는다.
언젠간 나도 저들처럼 오후 5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며.
그리고 삼척의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