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삼척에서 요가를 배우다.

어쩔 수 없는 선택

by 파사르

나는 요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 부담이 되는 동작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특히 물구나무를 서거나 몸으로 알파벳 D를 만드는 등, 안압을 높이는 동작도 마음에 안 들었다.

재난위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요가인이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늑한 실내에서 자기와의 사투를 벌이는데, 위기상황에 재빨리 나설 여력이 있을까.


나는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예로, 정신을 잃은 누군가를 업고 뛰기 위해 근육을 키우고, 지진해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달리기를 해야한다. 그런 나에게 요가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수련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자기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려, 물구나무를 서며 안압을 높이고, 후굴 자세를 하며 목과 허리를 아프게 하는 운동.

그랬는데, 엊그제 요가 수업에 등록했다.

외부로부터 나를 차단하며 내 마음과 내 세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물론, 지진해일을 피하기 위해 달리기는 따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삼척에서의 시간은 너무 쉽게 흘러갔다.

그 사이 해가 바뀌어 1살이 더 많아졌고, 그 생각에 퍽 괴로웠다.

시간이 주는 대부분의 고민들은 아래와 같았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할까.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1, 2년 만나다 헤어지면?

다시 시작인데, 그럼 남들에 비해 너무 뒤처지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은 이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30살이었을 때였다.

늦은 나이임에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 힘든 것은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놀고 있는 나를 잔인하게 쏘아댔다. 그런 아버지의 공격을 피하라고 언니가 월세 보증금을 빌려주었다. 언니가 보태준 용기로 누런 벽지가 킥인 월세 30만원에 나온 허름한 방을 얻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회사에서 주 30시간 근무를 시작했다. 퇴근을 하면 오후 4시였다.


여름엔 퇴근을 해도 해가 중천이라, 가볍게 차려입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따라 시원하게 달렸다. 그러다 출발점으로 돌아와 과일 트럭에서 오렌지나 자두를 사서 든든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는 곰팡이 핀 에어콘을 켜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다가 몸살이 났다. 그래도 그 방에서 책을 읽고, 식물을 기르고, 블로그를 하며 몹시 행복해했다. 그간 누적된 모든 불안이 불현듯 사라지고 만 어느 날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는 제대로 행복한 적이 없다. 널찍한 사택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만 겨우 채워져 있고, 집 근처를 뛰어다니기에는 언제 회사사람을 만날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불편했다. 바다는 액자처럼 박혀 있을 뿐, 들어갈 수 없었고, 회사일은 내 일이 되지 못했고, 월급은 삶을 쌓아올리기엔 부족했다. 30살의 그때처럼 궁지에 몰린 상황인데, 돌파구가 전혀 없었다.


어쩌면 마음이 몸에 붙어있지 않은 것같다.

텅 비어버린 마음이 그저 이리저리 부유하다가 순간순간 가장 절박한 고민에 붙어버리고 말았다. 대개는 연애, 결혼, 돈과 같은 것들이었다. 결국 마음을 단련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붙잡아두려면 운동만한 게 없다. 봄이라면 따지지 않고, 달리기를 했을 테지만, 달리기를 하기에는 바람이 아직 찬 것 같기도 하고.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달리다가 산에서 내려온 야생동물이라도 마주치면 낭패다.


그렇다면 아늑한 실내에서. 다함께 있지만 혼자서 견뎌내는 그런 거.

요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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