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을 벗어나다.
‘상경씨, 이번 주말엔 서울에 가서 와인 파티할래요?’
내 제안에 상경은 재미있겠다며 승낙했다. 돈 몇 푼 내면, 이성들이 바글바글한 모임에 참가할 수 있는데, 요즘 이런 모임이 인기였다.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상경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나는 삼척에서의 주말이 심심했다. 무엇보다 삼척에서보다는 사람 많은 서울에서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셈이 앞섰다.
하지만 상경과 내가 같이 참가할 수 있는 모임이 몇 안 되었다. 대부분 마감 전이었다. 와인 모임뿐만 아니라, 커피소개팅도 거의 마감이었다. 행사 1주일 전이었는데 말이다. 엄청난 인기였다.
예전에는 매개자가 중심이 되는 소개팅, 미팅, 결정사가 보편적이었는데, 몇 년 사이 온라인 기반 만남이 굉장히 활성화된 게 체감되었다. 대표적으로 소개팅 어플들이 그렇다. 미국, 특히 뉴욕 같은 대도시의 경우, 어플 만남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어플이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흐름이 국내에서도 인스타그램, 소개팅 어플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만남의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에는 ‘호스트’가 주도하는 소셜 미팅이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호스트가 장소를 대여하고, 와인 또는 커피를 제공하며 참가자들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짝을 지어준다. 지인 소개팅과 비교하자면, 원할 때마다 비교적 즉각적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소개팅 어플과 비교하자면, 다수의 사람에게 자신의 신상과 외모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덜 폐쇄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호스트 역시 개인정보와 직업인증을 거쳐 나름의 검증이 진행되고 있음을 부각한다.
모처럼만의 새로운 만남(게다가 도파민과 안전함이 같이 주어지는)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시 들떴다가, 이내 피로해졌다. 남녀간의 새로운 만남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너 시간 안에 서로를 알아가는 그 과정이 때로는 지루하고,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고, 나는 또 그걸 이겨내겠다며 애쓸게 뻔했다. 집 앞 소개팅도 잘 안 되는데, 대관령을 넘어간 미팅이 잘 될까? 그냥 동해 바다나 보고, 집 청소나 밀린 빨래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방은 따뜻하고 안락하지 않은가.
상경이 가기 귀찮다고 하면, 나 역시 군말 없이 따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기력이나 우울한 성정과는 거리가 먼 건강한 상경은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약속은 취소되지 않았고, 나는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도착하니 8시가 넘은 밤이었다.
날이 매우 추웠다. 쨍한 찬 공기가 그 어떤 습도로 덮이지도 않은 채, 기도와 폐로 콧물처럼 넘어오는 그 느낌이 얼마나 생경하던지. 그렇게 추운 와중에도 서울은 또 어찌나 건재한지. 지하철 안팎으로 사람이 새떼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무리지어 이동했다. 삼척의 파도 같기도 했다. 춥다, 추워도 너무 추우면 마음이 오히려 덤덤해진다. 덤덤하게 한참을 걸어 첫날밤에 묵을 숙소가 있는 홍대에 도착했다.
서울은 점점 예전보다 붐비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간 서울엔 50번은 왔었을까. 데이트로, 출장으로, 입사시험을 보러, 드라마작가 수업을 들으러, 50번쯤 오게 되니 서울 지리에 점차 적응하게 되었다. 복잡한 지하철도, 지방민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인파도.
다만 한가지 어려움이 새로 생겼는데, 그 사이 돌아다니는 게 퍽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백팩 하나 메고 돌아다니자, 몸이 너무 고되어 틈틈이 카페에 들러 몸을 잠시 쉬어줘야 했다.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지갑 사정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 첫날 밤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에 묵기로 했다. 호스트는 침대 맡에 게스트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올려놨다. 그 종이에는 가루 비타민이 붙어있었다. 환영의 의미였다. 그런 호스트의 따뜻한 Welcome과는 별개로 침대 이불은 차가웠고, 방바닥은 미지근했으며, 화장실은 냉골이었다.
도저히 그 공간에서 몸에 물을 끼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세수만 하고, 침대에 누워 핫팩을 뜯어 가랑이 사이에 껴 넣었다. 여러모로 현실감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 날씨에, 이런 잠자리라니. 물론, 이튿날 내가 돌아갈 현실은 그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돈을 아끼느라, 몸을 고생시킨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의 무능함이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는 게 불편했다.
차가운 발을 서로 비벼보다가 벗어둔 양말을 다시 신었다. 양말조차 차가웠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런 삶이 매일 일어나는 현실일 것이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숙소의 얇은 창틀 사이로 세어나오는 서늘한 외풍이 얼굴에 닿자, 서울역에서 숙소로 오면서 마주친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박스와 우산을 방패삼아 집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박스에 ‘가져가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불꺼진 지하철 역사 가게 앞에 엉덩이를 땅에 대지도 않고 쭈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잠을 자던 여자도.
이런 차디 찬 침대의 열악함조차도 가져가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자, 마음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 체온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보려 했지만, 이불이 조금 짧았다. 내 손바닥보다도 큰 핫팩은 느리게, 온기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