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와인 파티가 있다는데!
언제 잠에 들었는지,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보니 새벽 2시였다. 어디선가 굉장히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머리 맡에 있는 화장실문 틈새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 냉장고 같은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즐거운지, 두 사람이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외국인들이었다. 중국어를 하는.
10여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교환학생을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는 본토 중국에서 온 중국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외모도 화려하고 기운이 좋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쉽게 웃었고, 쉽게 이해했고, 활기찼다. 소위 '쿨하다', 라는 느낌을 줬달까. 그에 비하면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전반적으로 수줍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그런 걸 보면 중국 대륙에서 오는 기상이 실제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 고약한 냉골 같은 화장실에서 자지러질 여유가 있는 두 사람 역시 본토에서 온 중국인들일지도 모르겠다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눈을 감았으나, 그들의 대화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소란에 감기려는 눈이 자꾸만 떠졌다. 헤드폰을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한숨이 새어나왔다.
얼굴에 닿는 웃풍이 너무 서늘해서, 침대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너무 차가워서, 그 와중에 화장실에서의 소음이 쟁쟁 골을 울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20살의 나라면 그런 곳에서도 씩씩하게 잠들고 개운하게 일어났겠지만, 33살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저 화가 났다. 왜 방 한가운데에다가 화장실을 넣어놓은 거지? 하면서.
아주 오래 전에 공무원 공부를 준비한다며, 두어달 간 다녔던 독서실이 떠올랐다.
방 안에다가 화장실을 넣어놔서 변기 물을 내릴 때마다 쏴아, 하는 소리가 조용한 스터디룸을 가득 채우던 그 독서실. 써놓고 보니 독서실쪽이 좀 더 심하긴 한 것 같다.
우습게도 아침이 되자, 그래도 살아서 깨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났다. 20살의 내 삶의 수준과 33살의 빈곤함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데 좌절했지만, 그 하룻밤을 무사히 이겨내자, 마음이 다소 가벼워 진 것이다. 그것은, '나 아직 짱짱하구나?' 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어떤 순간이든 나 스스로 괜찮아지게 되는 순간을 맞딱뜨린다면, '진짜 괜찮아짐'이 뭔지를 알게 된다. 차가운 침대 위에서 홀로 핫팩을 흔들어가며 잠을 자도, 게스트들이 무신경하게 떠들어대는 소리에 잠을 설쳐도, 멀쩡히 괜찮다. 라는 걸 겪어 봐야 지금의 내 삶(돈 없고, 애인 없는)이 괜찮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고, 그런 감각이 쌓이면 불필요하게 나의 결핍을 부끄러워하거나 타인을 의식하는 힘을 덜어낼 수 있게 된다.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머물며 오전 9시 반이 되자, 퇴실을 앞두고 정말로 샤워를 해야하는 순간이 왔다. 냉장고 같은 화장실에 들어서 옷을 벗자 예상했듯이 찬 바람이 몸을 덮쳐왔다. 얼른 몸에 따뜻한 물을 맞추자, 밤새 얼어있던 몸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진즉에 샤워를 할걸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물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온도를 조절하려고 레버를 움직이자마자 찬물이 몸을 강타했다.
아얏!
유달리 커다란 샤워기 헤드에서는 극한의 찬물과 극한의 더운 물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그 극단성이 마치 예능프로그램 벌칙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물이 너무 뜨거웠기에 차라리 찬물 공격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샤워를 마치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밤새 추위로 잠을 설쳐서인지 얼굴도 푸석했다. 이런 얼굴로 와인 파티인가 뭔가를 가야한다니. 미등을 조명 삼아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바르고 다시 짐을 들쳐업고, 그렇게 반지하에서 올라오자, 차가운 아침이었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니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고통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한편 어리석은 나는 쾌락을 추구하려했다가 고통이 잔뜩 늘었다.
차라리 고통보다는 외로움이 나았을까.
내 이런 꼴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누군가 나의 이런 하루를 보고 있자면,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남자를 만나야겠어?'
'33살이나 되어 이제야 남자를 만나겠다며 애를 쓰는 거야?'
이런 식으로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품은 고민들을 단번에 해결하려고 대관령을 넘은 것이 아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인연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깨끗이 돌아설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나니까.
그땐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렇게 사랑이 아님을 확인받고, 삼척에서 혼자 떠도는 신세가 된 그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