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향별은 어디일까? 기억나지 않겠지만, 아마 나의 고향별과 같을 거야.
괜찮아. 고향별이 다르고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었더라도, 네가 다 잊었어도 이제 되었어. 너와 나의 생명줄이 닿아 이어지는 기적이 이렇게 이루어졌으니까!
생명의 본성이 소리와 빛이 되어, 우주에서 오래도록 별들을 정거장 삼아 떠돌며, 서로를 알아보려 애쓴 원력으로 드디어 이렇게 만났단다! 내가 지금 얼마나 기쁨에 겨운지, 이 환희를 너는 모르겠지만, 그 먼 여행을 견뎌 내고 내게로 와 줘서 그저 갸륵하고 고맙구나! 무한한 우주에서 생명의 만남만 한 어마어마한 신비가 어디 있겠니? 사람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는 미지수의 관문을 뚫고,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참 잘 왔구나, 우리 아가야! 네가 눈을 떠 네 세상이 열리고 온갖 생동이 시작된단다.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데, 지구의 시간이 짧아서 다할 수가 없구나.
네가 내 몸에 왔을 때부터 나는 무시로 얘기하고, 너는 우주의 기억이 지워진 자리에 내가 한 말을 앞뒤 없이 담았을 거야. 아! 인제 너를 안고 눈을 보며 말하는구나.
아직은 내 말이 이야기도 달램도 소망도 아닌 토막들이지? 나중에 그 토막말들이 이어져 들리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내 마음부터 전해지길 바란다. 네게 강물만큼 내 젖을 주고, 태산만큼 내 살을 주고, 햇살만큼 내 뼈를 줘야 하는데··· 엄마는 곧 지구별을 떠나야 한단다. 내 생명을 지워서 네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그러마. 아직 우주가 얼비치는 네 눈동자를 보니, 역시 내 짧은 생애에 가장 잘한 결정이구나! 다만 내 뇌에 자란다는 종양이 절대로 너에겐 전해지지 않았길 빌고 빈단다.
지구별에 막 내려온 아가들은 기억이 다 지워졌어도 아직 우주에 걸쳐져 있어.
하늘 향한 숨구멍이 크게 열려 있어서 고향별과 우주와 여전히 교감하는 중이지. 그러니 아가, 너는 우리 아가이면서 우주의 아가란다. 너를 향해 우주가 열려 있어.
너와 나의 영혼과 마음이 이어져 알겠지만, 너의 생명력은 이미 충만하고 네가 온 우주의 중심이란다. 그 사실을 늘 가슴에 여며 두고 생각하여라. 네가 이 편지를 언제 읽을까? 새엄마가 생기고 환경이 바뀌고 학교에 가고 친구와 놀 때도, 언제 어디서나 너는 엄마와 우주의 품속에 있단다. 우주에서 네게 신호를 보낼 거야. 어느 때 언뜻 어? 무슨 소리지? 느껴지면 그게 시작이야. 그 소리를 놓치지 말고 집중해 봐. 우리가 우주 안에 존재하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우주의 신호는 끊임없이 울리고 있어.
우주적으로 보면 생명은 변화하거나 옮겨 갈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단다.
엄마는 죽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너도 엄마가 죽었다고 여기지 않길 바란다. 네가 내게 올 때처럼, 다시 우주의 별들 사이를 떠돌다가 어느 별로 가는 긴 여행이겠지.
내가 멀리 가서도 너와 교감하기 위해 지구의 말글이 아닌 ‘우주의 소리’를 일러 주고 싶구나. 엄마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서 생각으로 세상과 우주를 보았단다. 하지만 내 생각을 그냥 지구 환경에 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는 없어. 바보 같은 소리로나 아파서 하는 헛소리로나 들을 게 뻔하니까. 또 우주의 소리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고 뜻을 알지도 못하니까. 엄마도 자주 집중해서 듣고 빠져들지만, 아직도 메시지나 이야기로 연결되지는 않아. 네가 뜻을 알고 듣는다면 정말 굉장하겠지?
사람들이 우주의 소리나 고향별을 모르는 건 거기서의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야.
생명의 씨앗이 지구별에 와서 움을 틔워 오래 막혔던 첫 숨을 토할 때, 머릿속에 가득 찼던 소리가 울음으로 터져 나가면서 고향별에서의 기억이 싹 지워져 버리거든.
생명이 별에서 별로 옮겨 갈 때는 앞에 살던 별의 기억을 깡그리 잊게 하는 우주의 섭리가 있나 봐. 그러지 않으면 온 우주가, 별과 별 사이가 좋고 나쁜 기억으로 얽히게 되어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다들 기억 없이 뚝 떨어진 자기 앞의 한 생에만 매달려, 그게 생명의 다인 양 살게 하는 질서지. 그런데 나는 그 섭리의 가느다란 틈 사이로 흘러나온 소리를 들었던 거야. 있는 줄도 모르다가 끌림을 느꼈고, 호기심에 이어 신비를 좇아 근원을 따라가니, 가만히 누워서도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었단다.
지상의 소리와 다른 우주의 소리는, 정수리 숫구멍으로 들어와 머릿속에서 울려.
가느다란 연속음처럼, 미세한 진동처럼,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느낄 수도 있는데,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까닭은 지상의 현상이 아니어서, 숫구멍이 막혀서 그런가 봐.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야. 귀를 양손으로 눌러 막았을 때 윙윙대는 이명과도 분명히 달라. 물론 귀를 막으면 이명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소리는 더 뚜렷하고 크게 울리지. 양쪽 관자놀이 사이로 스파크가 튀듯이 끊이지 않고 가느다랗게 오가는 파장처럼 느껴질 거야. 약한 전기가 흐르는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자르르 떨리는 듯한 느낌은 알 수 있잖아? 소리라기도 애매해서 글로는 아예 표기할 수 없고, 어떤 악기로도 흉내 내기 어렵지. 찰나의 끊임도 없으니, 시간을 스쳐 가는 소리 같기도 해.
뜻을 바로 알지는 못해도 우주의 소리에는 신의 계시 같은 깨우침이 담겨 있단다.
인류의 선각자들은 그 뜻을 알아챘거나 깨침을 얻어 지혜와 진리를 말했을 거야. 이슬람교의 코란도 알라의 계시를 모하메드가 받아 구전하여 기록한 경전이라더구나.
잔잔히 전해지는 우주의 신호에 익어지면, 뜻이 실리고, 의미가 이어지고, 말이 되어 전해질 거야. 우리가 사는 세상과 온 우주가 이어져 움직이는 이치와 까닭을 알게 해. 아가야, 너는 언제 그 소리를 듣고 한 번 더 깨어날까? 너는 선택받은 사람임을 알게 될 테고, 새로이 주위를 밝히면서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을 향해 열리도록 할 거야. 이 얘기는 곧 하늘로 오르는 엄마의 꿈이어도 괜찮다. 너는 다만 너의 모습으로 환하고 조화로운 우주의 기운과 함께하여라. 별처럼 빛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문학창작지원금 선정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