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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러냐 디자이너냐

생존의 법칙 그것이 문제로다.

by 문현주

얼마 전 온라인에서 뜨거웠던 주제가 있었다.


"캔바 같은 툴만 잘 다루면 디자이너일까?"


직원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여러 의견이 오갔지만 결국 모두가 동의한 건 이거였다.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만 작업한다면 그건 '툴러'에 가깝다는 것.


캔바든 포토샵이든 일러스트든,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생각과 크리에이티브를 시각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줄 아느냐는 것이다. 그게 바로 디자이너와 툴러의 차이다.


사실 디자인이란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식탁을 어떻게 차릴지 고민하는 것도 디자인이고, 생활을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모든 과정이 디자인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디자인인 셈이다. 다만 그 행위를 직업으로 삼으면 디자이너가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대표로서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건, 디자인은 '할 일'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그 니즈를 해결해야 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 디자이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당장 일거리가 떨어지면 무직이다. 흔히 말하는 백수가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였던 백수. 어떤 도구를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그 일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하는 뜨거운 논쟁을 읽으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공감되지 않았다.


50이 넘으면서 늘어난 게 하나 있다. 건너야 하는 다리를 계속 두드리는 버릇이다.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늦거나 흐지부지하게 되는 일도 많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혼자 몸이라면 빠르게 가다가 넘어져도 되지만,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모두 함께 넘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물론 결정이 되면 돌진한다. 그렇게 해서 진행한 것이 비록 틀렸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밤에 자다가 살짝 이불을 걷어차는 순간이 오지만, 남들 앞에선 의연해지려고 애쓴다.


디자인을 하거나 콘텐츠 제작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는 생각보다 빨리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툴은 일러스트레이션, 포토샵, 인디자인이다. 맥킨토시를 사용할 때는 쿽 익스프레스를 썼지만, 호환성과 비용 면에서 지금은 성능 좋은 일반 PC를 사용한다. 보험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캔바, 미리캔버스, 망고보드 등도 사용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체험하고 직원들에게 권하고 있다.


이미지를 하나하나 찾아서 가공하는 것보다 시간이 빨라서 카드뉴스는 이런 프로그램을 쓴다. 지금은 미리캔버스로 정착했다. 분명히 작업 속도는 빨라졌다. 그럼 이런 도구를 쓰는 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가 아닌가? 아니다. 그냥 단순히 툴일 뿐이다.


요즘은 AI 프로그램을 네 가지 사용한다. ChatGPT, 퍼블릭시티, 클로드, 릴리스. 목표에 따라서 다르게 활용하고 있다. 보다 전문적인 콘텐츠인 보험 분야에서는 여러 검증을 거치면서 작업하고 있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했던 콘텐츠들을 빠른 시간 내에 제작할 수 있어서 좋다.


생존의 법칙

그럼 나는 디자이너인가, 기획자인가, 작가인가, AI 툴러인가? 내가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건가?

그렇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용한다. 나이 들면 머리도 녹슨다고 하지 않나. 젊어서는 한두 번 봤던 것도 곧잘 기억했는데 지금은 오전에 본 것도 생소할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것들을 따라가기 버겁다. 내 브랜드, 내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해서 사용할 뿐이다.


현실적으로 도태되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서 배우려고 노력한다. 디자이너든 기획자든 창의력만 좋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툴을 잘 사용하는 것도 요즘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요즘은 그렇다. 직원 채용할 때도 기본적으로 이 툴들을 다룰 수 있으면 가산점이 있다.


몇 달 전에 어느 보험사 펫 보험 관련해서 브로슈어 의뢰가 들어왔었다. 같은 내용을 두 업체에서 진행하였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시간은 촉박한데 퀄리티는 좋아야 하니 두 업체에서 시안을 받아본 거였다.


결론을 말한다면 우리가 떨어졌다. 경쟁 업체 디자인을 보았다. 이미지 등이 주제에 딱 맞았다. AI를 활용한 이미지였다. 우리는 기존에 거래했던 이미지 에이전시에서만 찾아서 활용을 했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디자인이었다. 내가 봐도 이미지가 한눈에 들어왔었다.


툴을 잘 사용해서 툴러냐 디자이너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일로 만들고 어떻게 꾸준히 이어서 가느냐가 문제다. 생존의 문제다. 물론 툴만 익히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툴을 사용해서 디자인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었으면 요즘 광고주들도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의뢰를 하겠는가.


사실 도구만 사용하는 디자이너는 없다. 어떤 작업이든 생각이 들어간다. 선 하나, 점 하나, 그림 하나 선택해서 레이아웃을 정하고 서체를 선택하는 것 모두 디자인 행위다. 툴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 요청에 맞는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단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늘 생각하고 새로운 것이 나오면 배우고 접목시켜야 한다. 생존의 법칙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디자이너의 본질은 도구에 있지 않다. 생각하고, 기획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능력에 있다. 도구는 변하지만 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작업이든 생각 한 줌 없이 디자인되지 않는다.


물론 퀄리티는 다를 수 있다. 그건 작업자가 경험을 쌓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가는 현실이다. 클라이언트가 만족하고 우리를 찾는다는 것. 즉 일거리다. 할 일이 있어야 디자인도 있고 디자이너도 있다. 뜨거운 논쟁에서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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