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여의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추위 속에서 나는 한화손해보험 콘텐츠 프로젝트를 위해 여의도공원을 오가고 있었다. 차를 타기엔 애매하고, 걷자니 바람이 매서웠다. 그렇게 칼바람을 맞던 어느 날, 몇 달 동안 준비한 업무 협약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진짜 망했구나 싶었다.
회의는 지루하게 반복됐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변화는 없었다. 회사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아야 했는데, 그러던 중 클라이언트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험설계사 교육 콘텐츠.
아, 이거구나. 방향을 완전히 바꿨고, 기획부터 원고까지 새로 썼다. 결국 계약이 성사됐다.
콘텐츠 제작이 시작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교육 담당자와의 소통이 진짜 어려웠다. 강의용 원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겐 이미지와 어우러질 수 있는 '콘텐츠용 원고'가 필요했다.
그냥 내가 쓰자. 결국 내가 다시 쓰기 시작했다. 수정하다 보니, 어느새 처음부터 새로 쓰고 있었다. 에이,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내가 쓸걸.
사실 나는 디자이너였지만, 늘 글을 다뤘다. 디자인 제안서엔 항상 설명을 붙였고, 미팅 후엔 회의 내용을 정리해 공유했다.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렇게 쓰는 것이 습관처럼 익숙했다. 그 습관이 위기에서 역할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보험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카드뉴스와 뉴스레터 형태로. 보험은 정보가 꼭 필요하지만, 전달 방식에 따라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예민한 분야다. 그래서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고, 보기 편하게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다. 어렵지 않게 읽히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뉴스레터는 매주 하나씩, 빠짐없이 발행했다. 처음엔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100호까지는 가보자고 정해뒀다. 급하게 쓴 날도 있었지만,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130호를 넘겼을 즈음, 보험사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우리가 제안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우리를 찾았다. 드라마 같은 전환은 아니었지만, 그 일이 계속될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어? 이거 될 수도 있겠는데?
지금도 콘텐츠를 만들고, 정리하고, 발송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성과는 느리지만, 자료는 하나씩 쌓여간다. 보험설계사들이 직접 광고를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억지로 알리려 하지 않아도, 신뢰는 결국 전달된다는 걸 느낀다.
2명이던 직원은 지금 5명이 되었다. 작지만 급여가 밀리지 않고, 멈추지 않는 회사.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내가 대표로 맞는 사람인지, 계속해도 되는 건지.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해온 일을 무시하지 않고, 그 시간 안에서 길을 다시 찾고 있다는 것. 그게 지금 시대의 생존 아닐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처럼 하고 있다. '잘 쓰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은 여전히 따라온다. 그래서 사이버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일과를 마친 뒤 과제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 이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아직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꾸준히 쓴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가 만든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