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로도 디자인을 합니다.

by 문현주

2017년 1월, 여의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추위 속에서 나는 한화손해보험 콘텐츠 프로젝트를 위해 여의도공원을 오가고 있었다. 차를 타기엔 애매하고, 걷자니 바람이 매서웠다. 그렇게 칼바람을 맞던 어느 날, 몇 달 동안 준비한 업무 협약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진짜 망했구나 싶었다.


회의는 지루하게 반복됐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변화는 없었다. 회사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아야 했는데, 그러던 중 클라이언트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험설계사 교육 콘텐츠.


아, 이거구나. 방향을 완전히 바꿨고, 기획부터 원고까지 새로 썼다. 결국 계약이 성사됐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콘텐츠 제작이 시작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교육 담당자와의 소통이 진짜 어려웠다. 강의용 원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겐 이미지와 어우러질 수 있는 '콘텐츠용 원고'가 필요했다.

그냥 내가 쓰자. 결국 내가 다시 쓰기 시작했다. 수정하다 보니, 어느새 처음부터 새로 쓰고 있었다. 에이,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내가 쓸걸.


사실 나는 디자이너였지만, 늘 글을 다뤘다. 디자인 제안서엔 항상 설명을 붙였고, 미팅 후엔 회의 내용을 정리해 공유했다.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렇게 쓰는 것이 습관처럼 익숙했다. 그 습관이 위기에서 역할을 했다.


그냥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


그 일을 계기로, 보험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카드뉴스와 뉴스레터 형태로. 보험은 정보가 꼭 필요하지만, 전달 방식에 따라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예민한 분야다. 그래서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고, 보기 편하게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다. 어렵지 않게 읽히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뉴스레터는 매주 하나씩, 빠짐없이 발행했다. 처음엔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100호까지는 가보자고 정해뒀다. 급하게 쓴 날도 있었지만,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130호를 넘겼을 즈음, 보험사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우리가 제안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우리를 찾았다. 드라마 같은 전환은 아니었지만, 그 일이 계속될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어? 이거 될 수도 있겠는데?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지금도 콘텐츠를 만들고, 정리하고, 발송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성과는 느리지만, 자료는 하나씩 쌓여간다. 보험설계사들이 직접 광고를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억지로 알리려 하지 않아도, 신뢰는 결국 전달된다는 걸 느낀다.


2명이던 직원은 지금 5명이 되었다. 작지만 급여가 밀리지 않고, 멈추지 않는 회사.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내가 대표로 맞는 사람인지, 계속해도 되는 건지.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해온 일을 무시하지 않고, 그 시간 안에서 길을 다시 찾고 있다는 것. 그게 지금 시대의 생존 아닐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처럼 하고 있다. '잘 쓰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은 여전히 따라온다. 그래서 사이버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일과를 마친 뒤 과제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 이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아직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꾸준히 쓴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가 만든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디자인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나는 글로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글로도 디자인을 합니다.

keyword
이전 18화툴러냐 디자이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