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하나은행이 2001년에는 서울은행이었다.
그때 나는 삼청동에 있는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사회초년생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욕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패기 하나만큼은 흘러넘쳤던 시절이었을 거다. 그즈음 서울은행이 CI를 바꾼다는 이슈가 있었다. 기대했다. 어떤 고수가 디자인을 할까.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그리고 어느 날 출근길에 본 서울은행의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초록색 네모.
브랜드 매뉴얼을 찾아봤다. '늘 푸른 공간을 형상화' 했단다. 세상에나. 초록 네모를 그려놓고 거기에 그런 의미를 넣어서 클라이언트를 설득시킨 거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디자인한 사람이나, 그걸 그 값에 팔고 팔렸다니. 입이 떡 벌어졌었다. 그때 디자이너 친구들과 이 얘기로 술 마시면서 토론도 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겪는 충격이었다. 그게 오늘에야 나무위키에 최단명 CI로 기록된 로고라는 걸 알았다. 2002년 하나은행 인수 전까지 사용되었고 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의 기억에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처음 머리에 댕~ 하고 종이 울렸던 거 같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그랬다는 거다.
최근 스레드에서 하지원 그림이 핫하다. 댓글들은 뜨거웠다. 돈 벌기 쉽네, 우리 아이가 이것보다 낫겠다. 그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면 뭐든 그렇게 보이는 법이다. 댓글을 달다가 갑자기 서울은행 로고가 떠올랐다. 한참 밀린 일을 뒤로하고 가물가물한 서울은행 기록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나는 디자인과 예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문제 해결이다. 마케팅이고 홍보 수단이다. 그러니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딱히 불만이 없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근데 예술은 다르다. 작가와 그걸 알아주는 사람, 딱 둘만 있으면 된다. 알아주는 사람이 그 작품을 사면 된다. 그게 전부다. 물론 예술도 대중성을 띠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글쎄. 누구나 다 만족할만한 예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니 왈가불가할 일이 아니다.
배우 하지원이 쏘아 올린 그림 이슈 때문에 26년 전 자료를 찾아보면서 덕분에 옛 추억까지 소환하고. 그러면서 이런 정리까지 했다. 요즘 엉덩이가 들썩이는 날들이다. 그래도 진득하니 앉아서 예술이 아닌 디자인을 해내야 한다. 원고 늦게 주고 납품 빨리 해달라는 클라이언트님의 명령 받들어야 한다. 왜 이런 건 절대 안 바뀌는지......
클라이언트는 예술의 영역도,
디자인의 영역도 아닌 절대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