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자의 말
환자들이 많아 무척 바쁘고 분주한 날 생각해보면 그날은 항상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에는 항상, 어떤 병원이든 환자가 많다.
많은 환자분들 속에서 한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 기록을 해 본다.
당뇨, 고혈압으로 약물 치료를 받으시는 83세 남자 환자이고, 한 달 전 내원 시에는 혈압이 155/54였고, 식후 2시간 혈당이 180이었던 분이다. 오늘은 혈압이 121/63로 좋아진 데다, 식후 2시간 혈당이 118로 혈압, 혈당 수치가 둘 다 많이 좋아졌다.
지난 기록지에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많이 드신다고 줄이라고 권유한 흔적이 적혀 있길래
"식사 조절을 잘하셨나 봐요."
라고 말씀드리니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야지."
하시는데 평안한 얼굴이다. 병원에 오는 분들은 힘들고 찡그린 얼굴이 많은데 어떻게 이렇게 환하고 편안한 얼굴일 수 있을까? 삶의 내공이 느껴진다고 표현하면 좋을 듯한 표정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난번에 설탕이 들어간 음식 많이 드신다고 하셨는데 줄이셨어요? 수치가 많이 좋아졌어요."
라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열심히 했다고 웃으신다.
" 인생이라는 게 잠깐 놀러 왔다가 훌쩍 가는 것 같아. 몇 년 전에 아내도 가버리고. 병원에 한 달에 한 번씩 오는데 금방 병원 올 날짜가 돌아오네요."
"사는 데까지 감사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야지요."
라고 덧붙이시며 오늘은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나이가 많으셔서 일을 하시는지는 알 수 없어
"무슨 일을 하세요?"
"평소에 운동을 하세요?"
같은 질문이 아니라 open question으로
"평소에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라고 여쭤보니
"기도를 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며 지내요."
라고 하시며 또 나를 깜짝 놀라게 하신다. 교회 다니시냐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한다.
진료 다 보고 나가면서 활짝 웃으며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
"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나 한 달 후 안 죽으면 뵐게요."
오늘 죽음을 이야기하며 밝게 웃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드는 두 가지 생각.
- 내가 80세가 넘어서까지 산다면 할아버지와 같은 83세에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 모습은 어떨까?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행복하고 평안한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달 후 안 죽으면 뵐게요."라는 말씀에서
평안한 얼굴이면서도 죽음을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게 보인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그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죽음이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이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죽음을 준비하며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려면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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