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프로 불편러가 되었을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by blahblah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다들 묻는다. 그중 ‘동물을 좋아해서 그렇지’라고 묻는다면, ‘맞다, 나는 동물이 좋다.’라고 답한다. 동물이 이유 없이 그저 좋다. 길을 지나가다 만난 쥐를 봐도 반갑고 좋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물이 나로 인해 받는 고통을 외면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소소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의지 표현이라도 하고 싶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하고 불편하고도 외로운 일 일지라도 말이다.



안녕, 초롱아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의 즐거움은 주말마다 작은 텃밭에 가는 거였다. 그곳에서 흰색 바탕에 갈색 점이 있는 바둑이를 만났다. 주인을 찾아봤지만 없었고, 산 중턱에 덩그러니 있을 강아지가 안타까워 초롱이라는 이름을 붙여 데려왔다. 단칸방에 살고 있던 때였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키워줄 수 있는 외할머니 집에 맡기자는 엄마의 말에 따랐다.

엄마의 말처럼 외할머니 집에 가면 항상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나는 초롱이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초롱이를 잃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만 앞선 어린아이 일 뿐이라고. 애석하게도 어른들의 거짓말을 눈치껏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작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 나 혼자였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먹거리일 수 있었던 존재였다. 차라리 내가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초롱이가 더 오래 살며 좋은 사람을 만났지 않았을까.

가끔 부모님께 초롱이의 이름을 꺼내본다. 기억하는 것에 놀라며, 그때는 지금과 달랐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먹던 것이, 보신탕 음식점이 즐비하던 때가 있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부모님이 말하는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동물보호법이 강화되었고, 시대는 변했다.



모두가 같다고,

매년 한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는 개식용에 대한 이슈로 들썩인다. 나는 개식용에 대해서 우리나라 문화, 개인의 기호로 존중해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단순히 개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과학적 근거로 동물행동학적 연구와 구체적인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는 많다. 그 한 예로 가축(소, 닭, 돼지 등)의 경우 가축사육, 전염병 예방법 등의 관련 규정과 지침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개 농장의 경우 최소한의 규정과 지침이 없다. 법적으로도 가축과 반려동물 사이에 애매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어떻게 관리를 받았는지 농장주 외에 아무도 모른다. 또한 펫샵이나 유기견, 도난을 당한 반려견 등이 개농장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공장식 농장과 개 농장에서 직접 일을 하며 눈으로 본 이야기를 글로 담은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작가의 노동 에세이에 많은 진실이 담겨있다. 개 농장에선 깨끗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썩어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야만 한다. 깨끗한 물과 사료를 먹이는 건 비용 부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외부에 있는 개들이 흔하게 걸리는 심장사상충에 감염이 되어있는지, 어떤 병에 걸려 있는 상태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과연 개인의 기호와 문화를 위해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는 질병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국민을 이토록 방치해도 괜찮은 걸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개 농장도 가축사육시설처럼 합법화하여, 인도적인 사육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글쎄. 인도적인 사육과 죽음에 대해서 우린 잘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2012년 SBS "동물, 행복의조건 1부-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가 방영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관리받고 있는 동물이 처한 현실과 잔혹함에 다들 놀랐다. 그 후로 8년, 여전히 공장식 사육은 진행되고 있으나 동물복지시스템이 마련되었다. 개뿐만 아니라 동물들은 대상을 통해 상호교감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동물복지시스템, 인도적인 사육과 죽음 아래 이름을 붙여주며 충분한 상호작용을 한 뒤에 도살장으로 데려갈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어 왔다는 김춘수 시인의 글처럼, 어떤 것에나 이름을 붙여주면 특별해진다. 다만 우린 의미를 붙여줄 만큼의 시간도 윤리도 지켜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린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참 어렵네요,

나는 초롱이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된 후 난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몸에 닿는 것부터 동물성 제품을 제외해보고자 했다. 가방, 옷, 신발, 화장품 등 끝이 없었다. 심지어 약 캡슐도 젤라틴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태블릿 형식이나 식물성 캡슐이 외국에서는 선택할 수 있었으나 난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엔가 열이 펄펄 끓고 기침이 심해서 피를 토할 때까지 버티다가 기어간 병원에서 식물성 캡슐, 타블렛 형식으로 된 약으로 달라고 했다. 의사와 약사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난 도른자(돌아이) 였다.

역시나 현실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채식 3~4년이 되었을 때, 먼저 몸에서부터 반응이 시작됐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출근길마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의자에 앉아있어도 주변이 빙빙 돌거나,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병원에서의 병명은 메니에르였다. 메니에르는 귓속에 발병하는 질환으로 난청, 어지럼증, 이명, 이충만감의 4대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발병원인은 밝혀진 게 없다고 했다. 증세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약이 없다고 했다. 참 이상한 질병이라고 생각했던 차에, 템플 그 레딘이란 학자를 알게 되었다. 자폐증을 가진 그녀는 본인이 느끼는 감각들이 동물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동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장치 등을 연구해서 개선하고 있다. 이 분 역시도 육식을 끊고 나서 메니에르 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다시 육식을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지키고 싶은 일들은 삶의 아이러니 속에 얽히고 설켜서 도저히 분리할 수 없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벌거벗고 산속에 들어가서 원시인처럼 살아야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될 것 같았다. 초기에는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과 상황, 채식에 대한 날이 선 비난들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60년은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뭐라도 해보고 조금씩 작은 것부터 하다 보면 안 하는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 선수처럼 천천히 내 페이스에 맞춰서 지치지 않고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히지 않도록 말이다.






*추천책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템플그랜든 : 자폐를 딛고 세상의 절반을 바꾼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



*영상

카라 제3회 동물영화제 "고기가 되지 않을 자유"

다큐멘터리 "마지막 돼지" - 앨리스 아르고

SBS 동물, 행복의 조건 1부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매년 동물권 단체 카라에서 동물영화제를, 서울시에서는 환경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쉽게 접하기 힘든 해외, 국내의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물을 선보이고 있다. 고퀄리티의 영상물을 저렴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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