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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빈전단지 Nov 09. 2020

사회와 거리두기 - 상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차량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몇 번 국도가 공사 중에 있으니 우회하라고 알려 준다. 나의 경로와 무관하여 관심 있게 듣질 않았다. 설령 해당된다 하더라도 10~20분 차이 일테지. 그냥 익숙한 길이 마음이 편하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갑갑함에 창문을 열었다. 싱가포르의 고층 빌딩들이 불을 훤히 밝히니 대낮과는 다른 쨍함이 내 눈을 피곤하게 한다.

  거리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쇼핑몰과 레스토랑으로 꽉 차서 늘 북적거리는 오차드로드이지만 오늘은 거리 전체의 긴장감이 어제와 다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사회 전체가 생산을 위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였다면 주말은 소비를 위한 라인으로 교체된다. 거리의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흐른다.

   두 블록 정도 움직였을 때 회사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인의 말레이시아 생선 농장에서 주말을 보내려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이곳만 아니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았다. 따라가지 않으면 도로에 갇혔을 때 쌓인 갑갑함이 주말 내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주차를 하고 집 앞에서 바로 회사 동료의 차를 탔다. 싱가포르 국경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는 2 포인트가 있는데 한 곳은 회사 근처의 Tuas 지역이고 한 곳은 싱가포르 북쪽에 위치한 Woodland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매일 국경을 넘어서 출퇴근을 한다. 다들 아등바등 산다.

  누군가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삽니까?'라고 묻는다면 나 역시도 할 말이 없어진다. 노년이 풍족하기 위해서, 더 윤택한 현실의 삶을 위해서, 가족들과 더욱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 이유야 각양각색일 테지만 지금 여기에 우리는 꽤 익숙해진 그 아등바등 속에서 살고 있다.


   잡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 국경의 체크포인트에 도착하였다. 싱가포르 국경은 까다롭다. 차량의 남은 연료량마저 체크를 한다. (기름에 대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세금이 다르기에 기름 값이 꽤 차이가 난다.) 랜덤으로 차량을 골라 구석구석 살피며 금지품목 (껌이나 담배. 담배를 발견 시 개비당 벌금이 부과된다.)을 찾는다.

   급하게 나오느라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오지 않았다. 여권이면 될 줄 알았지! 검사관은 나를 사무실로 인도하였다. 운 좋게도 핸드폰 안에 외국인등록증이 pdf로 저장되어 있어 등록 번호를 알려주고 출력하여 제출하였다. 세관 공무원이 애매한 케이스라고 고민할 무렵 수완 좋은 동료가 "모든 파견자의 외국인등록증을 회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핸드폰에 따로 저장해서 갖고 다닌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였는데 세관에서는 알겠다고 하며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국경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인원들이 퇴근길을 위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서 나 같은 케이스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운이 좋았다.

퇴근길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국경

  늦은 밤 조호바루 시내에 도착하였다. 국경을 하나 두고 십 년 세월의 차이가 느껴졌다. 십 년이 뒤쳐진 조호바루 시내의 모습은 마치 1990년도의 우리네 모습 같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싱가포르의 1/4 가격에!) 한국의 옛 모습을 추억하며 감성에 젖어 잔돈을 세고 있는 나에게 동료가 말했다.

   "길거리에서 현금을 그렇게 꺼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거 같은데?"

   "응 괜찮아."

  그 들의 정글도는 한국의 회칼에 비해 왠지 두려움이 덜 느껴졌다. (물론 회칼은 영화에서나 봤습니다.) 그리고 이 번화가에서 그렇게 큰 정글도를 들고 다니면 쉽게 눈에 띌 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의 다음 한마디에 나는 다시는 지갑조차 꺼내지 않았다.

   "얘들은 주사기로 협박한다. 에이즈가 들어 있는 주사기로 널 협박한다고!"

  에이즈가 아니라 물감으로 가득 채운 주사기를 보여줘도 나는 아마 지갑에 여권까지 얹어 줬을 것 같다.

다시 보니 음산한 조호바루 시내. 멕시코 외곽 같은 느낌이다.

  껌, 담배, 맥주 등을 구입하고 다시 차량에 올랐다. 주거지가 사라지고 가로등이 사라질때즘 비포장 도로의 정글로 들어갔다.




싱가포르에서는 빛공해 때문에 오랫동안 별을 볼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별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별은커녕 길도 보이지 않았다. 정글의 입구에는 완벽한 어둠이 있었다. 시야를 모두 잃어버리니 더욱 또렷하게 벌레소리 새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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