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여기서부터 비포장 도로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생선 농장은 정글 한가운데 있기에 정글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생선 농장 따윌 따라가서 어쩌겠다는 거야'하고 후회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이미 주위는 완벽한 어둠으로 둘러 쌓여 버렸다. 달빛에 비친 나무들의 윤곽만 얼핏 얼핏 보였다. 한밤중이지만 후덥지근한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바람에서 진하게 진흙 냄새가 낫다. 우리의 시골 밤과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이었다.
대충 10미터를 이동할 때마다 차가 요동을 쳤다. 비포장 도로라고 하지만 너무 심하다. 방지턱을 넘을 때처럼 차가 아래 위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왼쪽 바퀴가 웅덩이를 지날 때 오른쪽 바퀴는 언덕을 지나는 느낌으로 덜컹거렸다. 차량은 한참 전에 GPS에서 벗어나 있었고 오로지 차량 라이트에만 의존하여 좁은 나무 사이를 지나며 달렸다. 계속 조금만 가면 된다고 반복해서 말하던 운전자도 동승자도 차도 모두 지쳤다. 한참을 달리다 차를 그 자리에 멈췄다. 어차피 지나가는 차도 없으니까. 잠시 쉬자며 모두들 차에서 내렸다.
벌레들이 모이기 때문에 차량의 모든 불을 껐다. 달빛으로 겨우 희미하게 주변이 보였다. 숲, 나무, 물웅덩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완벽한 미로의 중간에서 눈을 가린 채 버려진 것 같았다.
랜턴을 들고 풀이 조금 덜 자란 곳으로 잠시 걸어 보았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데 푸드덕 거리며 사람 크기만 한 것이 날아오른다. 뒤에서 보던 운전자 (피시 팜의 주인이라 이 일대를 잘 알고 있었다.)가 부엉이라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다. 야생 부엉이라니. 야생 동물이 많고 특히 뱀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깊은 숲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런 건 진작에 말했어야지!
20분을 더 달려서 생선 농장에 도착하였다. 전화를 하니 입구 근처가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졌다. 바리케이드가 열리고 사람들이 나왔다. 군데군데 초소도 보였다. 생선 농장이라기 보단 연대 수준의 작은 군부대 같았다. 고가의 열대어를 기르는 농장인지라 도둑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농장 주위로는 높은 펜스가 있었고 야간 경계를 돌아가며 스고 있다고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주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 영화에서나 보았던 완벽한 정글 안에 있었다.
아침의 정글은 밤과 사뭇 달랐다. 정체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바람에 날카롭게 날리는 나뭇가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둑을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사람도 짐승도 나무도 긴장을 풀고 여유로움을 가졌다. (끈질기게 괴롭히던 모기는 그대로였다.)
어젯밤에는 볼 수 없었던 농장에는 셀 수 없는 만큼의 저수지가 있었다. 진흙탕 색의 저수지 안에 거뭇거뭇한 물고기들이 보였다. 족히 1미터는 되어 보였다. 근처에 있는 나무 열매를 못으로 던졌더니 물의 파장을 느낀 물고기들이 사료인 줄 착각하고 뛰어올랐다. 둑에 퍼질고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들은 중국으로 팔려 간다고 들었다. 귀한 몸이라 한 놈 한 놈 증명서와 함께 몸안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서 수출한다고 한다. 너무나 생소한 생선의 외모와 크기 때문인지, 나른한 정글의 햇살 때문인지 어떠한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말레이시아 국경 근처의 슈퍼에 들렸다. 자일리톨 같은 껌을 몇 통 사 오더니 차량 의자 바닥에 툭툭 던진다. 이런 곳은 검사를 안 한다고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대로 껌 밀수업자로 잡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폼 안나게... 껌 밀수가 뭐냐 껌 밀수가...
큰 녀석들은 1미터도 넘어 보였다. 깊이도 감이 오지 않는 못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선을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밤에 훔쳐간다고? 애초에 불가능한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