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롄
일정을 마무리하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늘은 절대 나가지 않고 호텔방 안에서 평화롭게 머무르리라. 안타깝게도 나의 바램은 몇 분 만에 보기 좋게 무너졌다. 호텔 밖이 부산스럽다. 소방차가 한대, 두대 인근 소방서에서 총출동한 듯 줄줄이 들어온다. 이 일대는 내가 지내고 있는 호텔을 제외하고 건물은 없다. 호텔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일단 로비로 확인 전화를 했다.
“호텔에 지금 문제가 생겼나?”
“......”
“불이 났나?”
“......”
믿기지 않겠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유창하게 영어를 쓰는 직원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당직자는 영어를 못했다. 최대한 천천히 간단하게 다시 물었다.
“파이어 카! 매니매니 파이어 카! 와이! 파이어?”
“아!! 노 노 노 파이어. 파티 투데이.”
파티 투데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로비로 내려갔더니 제복을 입은 공안들과 소방관들이 로비에 가득했다. 영어를 하는 직원을 찾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오늘 근처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신년행사를 합니다. 따라서 당일 2-4층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 도대체 왜 소방차를 타고 오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은 가라오케 소리와 낮술 파티의 소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누가 봐도 덩그러니 혼자 있는 호텔에 문제가 생겼구나 하고 느껴지는 긴박한 순간.
어차피 일정도 마무리되었고 더 이상 호텔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삭막한 동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황량한 정말 쿠앤틴 타란티노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터프한 위치의 호텔이다.)에서 공무원들 잔치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아 다렌 시내로 숙소를 이동하였다.
좀 더 현대화된 번화가에서 문명을 즐기며 평온하게 휴식하리라.
체크인 후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거리 좌판이 하나둘씩 깔리더니 붉은 상자의 물건들을 판다. 중국이야 워낙 붉은색을 좋아하고 길함을 뜻하는 물건들도 죄다 붉은색 투성이 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항상 문제가 되었다.)
중국 설날은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고 친지들과 오랜만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빠질 수 없으며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면 폭죽놀이가 시작된다.
폭죽이다. 저 모든 붉은 상자들이 폭죽인 것이다.
처음에는 기관총 소리처럼 타닥거리더니 그것을 기점으로 하여 도시 전체에서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로 올라가며 터지는 폭죽도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자판에서 본 폭죽의 종류가 이것들이었다. 몇천 원만 내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그럴싸한 폭죽을 살 수가 있었다.
도시 전체가 화약냄새로 가득하고 조명탄을 쏜 것처럼 밝았다. 게릴라병처럼 폭죽을 점화하고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은 설날을 축복하기 위해서인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불을 붙였다. 나는 새벽 네시 마지막 폭죽 소리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호텔 방 안에서 폭죽놀이를 즐겼다.
호텔 방 유리에 폭죽 파편이 맞는 소리를 듣고 잠들기를 포기하였다.
다롄의 잠못 드는 밤 - 도입부
다롄의 잠못 드는 밤 - 클라이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