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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빈전단지 Dec 16. 2020

뜨듯한 국물이 생각날 때

대만, 타이베이

  완벽한 겨울이다. 얼음 같은 바람이 스치니 허벅지와 무릎이 시리다. 뜨듯한 국물이 먹고 싶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 앞에서 꽁꽁 언 손과 귀를 녹이고 싶다. 기왕이면 칼칼한 국물이었으면 좋겠다. 어묵도 넣고 고춧가루가 둥둥 뜬 국물에는 두부와 쑥갓도 떠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추운 날씨뿐만 아니라 심한 숙취에 괴롭거나 기름진 음식에 속이 니글거릴 때 또는 그와 유사한 3500가지 이유에서 뜨듯한 국물이 생각이 난다. 이 정도면 예외 없는 완벽한 답정너의 인과관계이다.

   한국에서 국은 식사의 완성, 마침표 같은 역할을 하는 반면 다른 식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국을 먹는 것이 관습이 아닌 습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지라 해외의 마침표 없는 식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더구나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요소이기에 스스로 이성적으로 타협하기도 힘들다. '그래 영국에 왔으니 오늘부터 나는 삶고 튀긴 감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불가능한 일이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해외출장 시 식사는 때운다는 개념으로 하였지만 삼십 대 중반을 걸쳐 사십대로 오면서 적어도 음식에는 타협하지 않기로 하였다. 대신 그럴싸한 대체품을 찾아본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달 1~2주간 대만 출장을 왔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한자 마저 까막눈인지라 글자로만 빽빽한 식당 메뉴판으로는 주문이 곤혹스러웠다. 몇 번의 실수를 통해 국+면의 조합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자로 꽉 찬 메뉴판의 제일 윗 음식을 주문한다. (대부분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 위치한 자리, 김밥천국의 일반 김밥과 같은 메뉴판 상의 포지션).

  맑은 국물의 노말 한 맛을 먼저 확인한 후 두 번째 방문에서는 이것저것을 추가해 본다. 핸드폰 번역기에 의존해서 베이스 육수에 어떤 것들이 어울릴지 나름대로 조합을 해본다. 차량을 개조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가끔 고출력 엔진을 설치한 경차 같은 괴작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멋/맛이 있다.


- 어류 베이스의 국수에는 당연하게도 어묵이 어울린다. 물고기 살로 만든 완자, 어묵을 추가하면 그럴싸한 어묵탕이 완성된다.

- 매운 고기 국수에는 고추가루를 더 추가한 후 오이와 계란 프라이를 올리면 전반적으로 밸런스 잡힌 고기 국수를 먹을 수 있다.

- 우육면은 그대로 먹어도 우리의 갈비탕과 맛이 유사하다. 마늘을 추가하고 파를 추가하면 우리의 갈비탕과 더욱 맛이 비슷해진다. 넓적 면도 의외로 우육면에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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