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롄
다롄 출장을 며칠 앞두고 현지 주재원으로부터 날씨가 매우 추우니 단단히 준비하고 오라고 연락을 받았다. 지도를 보니 다롄의 위도는 평양 같고 나는 철원과 춘천에서 군생활을 했기에 추위쯤이야 패딩 한 벌, 내복 두 겹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국 당일 한국 역시 폭설로 인하여 두 시간 정도 비행기가 연발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구경하던 활주로 제설 작업이 곧 시작될 극한 추위 체험의 인트로였음을 그 때라도 눈치를 챘어야 했다. 공항 편의점에서 핫팩이라도 몇 개 더 샀어야 했다.
(큰 착각 - 같은 39도 위도이지만 평양은 내륙이고 다롄은 바다를 끼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평양의 추위를 경험 하지 못했다.)
늦은 밤 다롄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지사장님의 초대로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술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술이 센 편도 아닌지라 사양했다.
“여기는 날씨가 춥기 때문에 체온 유지를 위해서 이 정도 독한 술은 마셔둬야 해.”
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억지로 권해서 몇 잔을 마셨지만 별로였다. 복숭아 향이 감도는 백주라 했지만 싸구려 샴푸 향이 입을 몇 번을 헹궈도 가시질 않았다. 살짝 오른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첫날의 피곤함과 긴장감 때문인지 이 동네 날씨가 전혀 춥지 않았다. ‘거봐 평양이랑 별 차이 없구만... 오버는..’
밤새 많은 눈이 왔다. 현장으로 가는 아침 차 문이 얼어서 열리지 않았다. 호텔에서 받아온 뜨거운 물로 손잡이를 녹이고 엔진 예열을 기다리면서 어쩌면 생각한 것보단 좀 더 추운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점심 식사 후 현장에는 폭설이 내렸다. 살면서 그렇게 빨리 쌓이는 눈은 처음 봤다. 위에서 아래로 소복소복 쌓이는 눈이 아니라 사방에서 바람을 타고 막 쏟아졌다. 영화 고지전에서 봤던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던 눈은 찰나에 발목 넘어 쌓이고 온 작업장을 하얗게 덮었다. 눈발은 그치지 않았고 모든 작업은 중단되고 작업자들은 사무실 난로 앞으로 대피하였다. 아침에 길거리에서 산 귀마개가 큰 도움이 되었다.
“젊은 녀석이 이 정도가 뭐가 춥다고 참.”
중무장을 하고 온 나를 보며 어제 술을 권하던 지사장님이 한심스럽단 투로 말했다. 본인은 난로 상석에 앉아 벌벌 떨고 있으면서.
해수욕장도 얼었다.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