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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빈전단지 Oct 30. 2020

길 위에서 - 하

스웨덴, 팔켄베리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간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여독을 풀고 맥주를 한잔 한 후 푹 자야겠다. 팔켄베리 역에 도착하였을 때 완벽해 보였던 나의 계획은 1단계부터 글러 먹었음을 깨달았다.  작은 마을 기차역 앞에는 택시는커녕 지나가는 행인도 없었다. 6km 정도는 걸어서 가도 어떻게든 된다고 믿었던 이 긍정적인 이방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로등 없는 거리는 마을은커녕 길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보여주지 않았고 끝없는 추위와 어둠만이 30kg 짐을 들고 있는 우리를 반겨 주었다.

팔켄베리 역. 택시는 오직 전화 예약으로 이용 할수있다.

  10월의 스웨덴 날씨는 충분히 쌀쌀했기에 어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침을 뱉어 방향을 잡아야 할까'하고 고민할 정도로 막막했다. 역사에 붙어있는 지도는 스웨덴어 투성이에 빽빽한 거미줄로 그려져 있어 현재 내 위치를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단지 기억하는 것은 예약한 호텔이 강변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 같지만 '야간에는 바람이 산에서 강으로 분다'는 믿음 하나로 바람에 날리는 깃발을 보고 대충 방향을 잡고 걸었다. 깃발의 끝 방향을 따라가면 강이 나올 것이고 강변의 카페나 식당들의 불빛을 따라가다 보면 호텔이 나올 것이다.

  희미한 윤곽을 따라 걷다 보니 조금은 더 밝은 찻길이 나왔고 공원이 나왔고 사람들이 하나둘 씩 나오면서 마을이 나왔다. 십 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을 따라가 보니 술집 불빛들로 환한 강변이 나왔다. 마을에서 제일 크고 유일한 호텔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영어로 긴 설명을 해주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어깨만 욱신 거렸다. 서로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체크인에 의례 필요한 카드, 여권을 주고받았다. 오래된 IKEA 가구의 쇼룸 같은 좁은 방에서 안도하며 깊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렌터카를 추천하던 공항 직원이 비웃으며 말했다. I warend you!




마을의 유일한 호텔이면서 고급 레스토랑 이면서 밤에는 펍으로 변신하는 공간. 잡화점에서 파는 엽서나 마을 소개서에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한다. 그만큼 볼 것이 없는 동네
 호텔과 함께 유명한 마을의 명물 돌다리(?).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붕괴 되었으나 전쟁후 재건 되었다고 한다.
매년  1m 이상 오는 눈과 3시 반이면 어둑해지는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이 곳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지내는 공간이라도 아기자기하지 않다면 삶이 너무 우중충 하다. 실제로 TV에서는 우울증 약 광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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