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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Apr 06. 2023

문맥이 잡히고, 문장이 해석되는 『자기만의 방』- 1장

민음사판 해설


            민음사, 이미애 옮김



1장            


1.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 10월 캐임브리지 대학의 여성 칼리지 뉴넘과 커턴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강연을 합니다그녀는 강의 이후에 이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방을 집필합니다저희가 보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 자기만의 방은 이와 같은 과정으로 탄생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부탁받은 주제인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의에서 주제의 직접적 응답이 될 수 있는 “여성의 본성과 픽션의 본질”을 내용으로 하는 강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제에 직접적인 응답을 하기보다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주제와 다소 동떨어진 내용으로 강의를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저서 “자기만의 방”에서 왜 ‘여성은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가’를 6장에 걸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2. 버지니아 울프는 논쟁적인 문제에 대하여 객관적 데이터를 비교하며 자신의 논지를 주장하기보다는주제에 대하여 청중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강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강하게 부딪치는 논쟁적인 문제일수록 한쪽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어떻게 내가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청중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청중이 강연자의 한계와 편견 그리고 특유한 성격을 관찰함으로써 그들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 낼 기회를” 주려는 의도입니다.          

 

사실적 데이터만 나열하는 방식은 강연자의 특성을 관찰하며 판단하는데 필요한 여분의 정보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픽션을 가미하여 자신의 결정 과정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강연자의 한계와 편견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청중들이 강연자의 주장을 스스로 판단을 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처럼 청중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에 동감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듯도 합니다.     

           

3. 버지니아 울프는 가상의 대학인 옥스브리지의 오찬과 펀엄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합니다옥스브리지는 가상의 남자대학이고펀엄은 가상의 여자대학입니다그녀는 오찬에 가는 도중 보고 싶은 원고가 생각나 옥스브리지 대학 도서관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도서관 문 앞에서 거절당합니다     


옥스브리지의 오찬 모임에 가는 도중에 밀턴의 ‘리시다스’, 새커리의 ‘헨리 에스먼드’ 원고가 옥스브리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원고를 보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도서관 문 앞에서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문명의 줄기를 찾아볼 수 있는 도서관이 여성들을 순탄하게 받아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울프는 “분노에 차서 계단을 내려오며 다시는 호의적인 수락을 요청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합니다. 마침 음악 소리가 대학 교회당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울프는 오르간 음악을 따라 교회당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교회당 앞에서 세례 증명서나 사제장의 소개서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교회당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외부의 아름다움과 교회당 앞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중세대학과 현재의 대학을 생각합니다. 중세시대 왕족과 귀족들은 대학에 금과 은을 쏟아부었을 것입니다. 이성의 시대인 현대에는 상인과 제조업자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벌 수 있게 기술을 제공해 주는 대학에 돈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오찬에 참석할 시간이 다가와 울프의 사유는 잠시 멈춥니다.           


4. 옥스브리지의 오찬에 참석합니다옥스브리지는 경제적 지원이 많아 오찬 준비가 잘되어 있는 곳입니다기존의 작가들은 오찬에서 누가 재치 있게 말하고 행위했는가를 기록해 왔습니다. 울프는 이와 달리 준비된 음식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옥스브리지는 경제적 지원이 풍부한 남자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식기에 잘 요리된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리사 손에는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연이어 나옵니다. 오찬은 넙치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자고새 요리가 나오고, “톡 쏘는 맛과 부드러운 맛이 가미된 온갖 종류의 소스와 샐러드를 곁들인 갖가지 다양한 새고기들이” 순서에 맞추어 나왔습니다. “노란색, 진홍색으로 빛나던 포도주잔들은 비워졌다가 다시 채워지곤 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창밖으로 재를 떨다가 우연히 창밖에 앉아 있는 꼬리 없는 고양이 맨섬 고양이를 보게 됩니다. 맨섬 고양이의 꼬리 부분을 바라보다 울프의 사유는 옥스브리지의 오찬 모임에 결핍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곳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1차 대전 이전의 오찬에서의 대화와는 다르게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전에는 “콧노래 소리, 명료하지는 않지만 음악적”인 리듬을 대화 속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파시즘의 분위기 때문인지(?) 오찬에 참석한 사람들의 대화에는 은은한 콧노래 소리가 결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대화를 자극하며 사랑 리듬을 놓치지 않게 흐르는 잔잔한 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전쟁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옥스브리지 오찬의 대화가 시인들에게 사랑의 시를 노래하도록 영감을 제공하지 못하는 대화임은 분명합니다.     

      

5. 펀엄의 만찬 모임에 도착합니다옥스브리지와는 달리 경제적 지원이 빈약해 교정도 거칠었고 만찬 준비도 형편없었습니다펀엄은 사유의 물적 토대가 빈곤했습니다.           


펀엄은 경제적으로 빈약한 여자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모두들 커다란 식당에 모였지요.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수프가 나왔지요. 그것은 평범한 고깃국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어떤 것도 들어있지 않았지요. 그 멀건 액체를 통해 접시 바닥의 무늬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접시도 평범한 것이었지요.” 


이후 퍽퍽한 비스킷과 치즈와 물병들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식사가 끝났지요. 모두 의자를 뒤로 밀었고 회전문이 거칠게 여닫혔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실상 마음과 몸, 두뇌가 함께 결합되어” 있는 존재라고. 저녁 식사를 잘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쇠고기와 프룬을 먹고는 등뼈의 램프에 불이 켜지지 않습니다.”     

      

울프는 펀엄에서 가르치고 있는 친구와 만나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 밀려드는 어떤 흐름에 의식을 맡깁니다. 펀엄에 도착하기 전 대학 예배당 근처에서 멈추었던 사유가 이어집니다. 옥스브리지 대학의 발 밑에는 왕과 귀족들의 성금과 오늘날 산업계의 거물들의 기부가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거칠고 정돈되지 않는 정원 풀밭” 위에 세워진 펀엄의 발 밑에는 3만 파운드의 모금도 놓여있지 않았다는 생각 합니다.      

6. 버지니아 울프는 비난받아 마땅한 우리 어머니들의 가난을 경멸합니다여성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경제력이 없는 여성들은 대학에 많은 돈을 기부하지 못하고 많은 아이들을 낳았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 어머니들이 사업을 하고 기술을 배워 자신만의 성이 배울 수 있도록 장학금, 상금, 연구기금을 남겼더라면 “우리는 오늘 밤 안락하게 앉아 있을 것이고, 고고학, 식물학, 인류학, 물리학, 원자의 성격, 수학, 천문학, 상대성 이론, 지리학 등의 주제로 대화했을 겁니다.”      


그러나 “3만 파운드를 끌어모으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의 어머니들”은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아 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울프는 숙소를 돌아와 생각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물려줄 돈이 없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그리고 가난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한 부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내가 고른 ‘1의 명문장 :      


【버지니아 울프는 맑은 날 강둑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생각들이 형태 없이 솟아 올라옵니다. 울프는 그 생각들을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알맹이가 형태를 잡아갈 무렵 흥이 울프를 이끌고 이리 저러 끌고 갑니다. 그러던 중 잔디밭에 들어갔고 나타난 교구 관리인에게 제지당하면서 생각의 알맹이는 사라져 버립니다.】       


날씨가 맑은 10월의 어느 날 어느 강둑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 온갖 편견과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주제에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성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 사색이 그 낚싯대를 강물 속에 드리웠습니다. 그것은 몇 분간 물 위에 비친 그림자와 수초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지요. 마침내 낚싯줄 끝에 어떤 생각이 갑작스럽게 응결되었습니다.           


그래 그것을 조심스레 잡아당겨 살짝 펼쳐 놓았지요. 아아, 풀밭 위에 내려놓자 나의 사고는 얼마나 작고 하잖게 보였는지요. 사려 깊은 어부라면 언젠가 살이 더 붙어 요리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도록 다시 물속에 놓아줄 만한 정도의 물고기였습니다.      


--- 그러나 비록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의 신비스러운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마음속에 집어놓자 이내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치솟았다가 다시 가라앉고, 여기저기서 번뜩이며 물밀 듯 요동치는 그 사고의 격정 때문에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지요.          

 

그리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잔디밭을 가로질러 재빨리 걷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웬 남자의 모습이 솟아올라 갑작스럽게 나를 가로막았습니다. --- 그 사람은 교구관리였고 나는 여자였습니다.----- 이곳은 대학의 특별 연구원이나 학자들에게만 허용된 장소였으며 내게 적합한 곳은 저 자갈길이었습니다.        

   

---(나의 비난은) 삼백 년 동안이나 줄곧 물결치듯 펼쳐온 그들의 잔디밭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내 작은 물고기를 숨어 버리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대담하게 잔디밭으로 침입하도록 나를 격동시킨 그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기억해 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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