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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Oct 10. 2022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강의 “채식주의자”           


1) 남편이 영혜와 결혼한 이유 – 평범함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남편이 영혜를 만나는 것은 영혜가 세련되었거나 매혹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영혜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개성 없고 단순한 옷차림, 모나지 않은 성격이 그를 편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한 영혜는 아내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나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출근 배웅을 하고, 시간이 남으면 가사 경제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2) 평범한 영혜의 어떤 징후 – 브래지어 착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혜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혜는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와 입을 수 없다며, 외출할 때도 조끼를 겹쳐 입는 것으로 브래지어를 대신한다. 영혜의 이런 행동은 일종의 징후다.          


징후란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비집고 나오기에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두꺼운 층위로 솟아 올라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사후적으로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영혜의 행동은 이후 맨몸으로 있는 것을 즐겨하며, “몽고반점”과 “나무불꽃”에서 아직도 몽고반점을 간직한 몸에 꽃을 그리고 나무처럼 광합성으로 살아가려 음식물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아간다.           


3) 압축된 사건을 만나고, 악몽을 시작한다.      

『빨리, 더 빨리. 칼을 쥐 손이 바빠서 목덜미가 뜨거워졌어. 갑자기 도마가 앞으로 밀렸어. 손가락을 벤 것, 식칼의 이가 나간 건 그 찰나야.』          


남편의 재촉과 높은 언성에 아침을 준비하는 손놀림이 바빠졌다. 급하게 얼어붙은 고기를 쓸다 보니, 식칼은 이가 나갔고, 영혜는 손가락을 베개 된다. 허둥대며 아침을 준비하였고 남편은 준비된 불고기를 먹다가 입에서 칼 조각을 뱉어낸다. 남편은 소리친다. “그냥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죽을 뻔했잖아!”.      


다음날부터 영혜는 반복되는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받아들여 평범하게 된 세계’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싹하고 두려운 느낌의 피의 이미지를 반복하는 악몽이 강박적으로 반복된다.        

  

4) 서로에게 칼날이 되는 세계를 평범함으로 받아들이는 오싹한 세계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어린 영혜의 다리를 물었던 개 이야기는 ‘받아들여 평범해진 세계’가 얼마나 오싹한 세계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물림과 그에 대한 해결 방식으로써 죽임, 그리고 그 육신을 먹어 치워 버리는 방식.        

  

아버지는 어린 영혜의 다리를 물어뜯은 개를 오토바이에 묶는다. 아버지는 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죽을 때까지 오토바이를 멈추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어린 영혜도 국에 밥을 한 그릇 말아먹었다.           


5) 완전한 채식을 시작한다 - 피와 육식의 역사 이전으로 돌아가기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아내는 옅은 회색 면바지 위로 상체를 벌거벗은 채 텔레비전 장식장 앞에 기대앉아 감자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선명히 드러난 쇄골 아래로, 너무나 살이 빠져 이제는 조금 둔덕져 있을 뿐인 젖가슴이 보였다.”  ------ “ 그걸로 뭘 하려고?” 나는 태연을 가장해 물었다. “쩌먹으려고.”          


영혜는 냉장고에 있는 모든 육류를 버린다. 계란, 우유도 남겨 놓지 않았다. 집에 있는 모든 가죽 제품을 버리고, 남편 곁에도 가지 않는다, 남편에게서 고기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영혜의 채식은 피와 육식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으로 가려하는 것이다.      


“나무 불꽃”에서 영혜는 광합성으로 살아가려 모든 음식을 끊고,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무가 되려 물구나무를 선다. 영혜는 인간이 만든 역사 이전의 세계로 가려는 것이고 영혜의 신화는 완전한 채식에서 시작한다.     

 

7) 알길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영혜의 채식        

『얼마 전에 오십만 년 전 인간의 미라가 발견됐죠? 거기에도 수렵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남편은 회사에서 직책이 과장인데 상무, 전무, 부장 부부들을 초대한 사장 주최의 연회에 초대받는다. 그는 회사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사장 주최 연회에서 음식이 연달아 서빙되어 나온다. 영혜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에 영혜는 말한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남편은 건강상의 문제로 부인이 채식을 한다는 말로 변명을 한다. 연회에서 잠시 채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아내의 존재가 모임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참석자들은 점점 영혜가 존재하지 않는 듯 서로 간에 주제를 찾아 대화를 이어간다.      


남편이 연애 시절, 영혜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을 유혹으로 받아들였듯이, 영혜의 채식은 남편뿐 아니라 연회의 참석자에게 알길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들어본 적 없는 까마득히 어두운 함정 같은 거였다.           


8) 아버지의 해결 방식과 영혜의 자해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 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남편이 가족들에게 영혜의 채식 이야기를 하였고, 가족들은 이로 인해 언니 집에 모두 모이는 기회를 만든다. 언니, 남동생, 부모님 모두가 영혜의 채식을 금지시키려 하는데, 영혜는 단호하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가족들의 설득과 협박이 통하지 않자, 아버지는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자기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아들에게 영혜를 붙잡게 하고 손으로 탕수욕을 집어 강제로 영혜에게 먹이려 한 것이다. 힘에 부쳐 몸부림치던 영혜는 입으로 짓이겨 들어오는 고기를 더 이상 막지 못하자 칼로 손목에 자해를 하여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9) 엄마의 외침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영혜는 입원을 하였고 딸이 너무도 안쓰러웠던 엄마는 흑염소 약을 한약이라고 속여 먹이려 하지만 영혜는 토해버린다. 이를 보고 엄마가 딸을 향해 말한다.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거울 좀 봐라, 네 얼굴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평범하게 살았던 시간을 벗어난다면, 누군가에게 물리면 죽임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거부한다면, 들어본 적 없는 까마득히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면, 결국은 사람들이 너를 이 세계서 배제시켜버릴 거라는 엄마의 외침이다.             


10) 아내의 손에 쥐어져 있는 죽은 동박새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 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병실에 함께 있던 남편이 잠을 깨서 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아 급히 아내를 찾으려 밖으로 나가본다. 분수대 옆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아내가 거기 있었다. 상의를 벗어 무릎에 올려놓은 채, 여윈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내를 보니, 아내 손에는 포식자에게 뜯긴 듯 피 흘리며 죽은 작은 동박새가 쥐어져 있었다.     


다음은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문단이다.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 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영혜는 상의를 벗고 앉아 있다. 작은 동박새는 영혜의 손아귀에서 떨어졌고, 포식자에게 뜯기어 붉은 혈흔이 선명하였다. 사람들은 모여 웅성거리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포식자들이 혈흔 선명한 작은 동박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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