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이 잡히고, 문장이 해석되는 『자기만의 방』- 6장
민음사판 해설
1. 1928년 10월 26일 런던의 거리, 사람들은 사적인 용무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를 읽거나 ‘소설의 미래’, ‘시의 죽음’에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런던 거리에서 인간 내면의 본성인 양성성과 일치하는 장면을 마주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경험을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 10월 26일 아침 런던 거리를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책을 내려놓고 창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런던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여인, 사업가처럼 작은 가방을 들고 가는 사람, 장례식 행렬, 심부름꾼 소년을 바라봅니다. 이들은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흐름이 버지니아 울프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은 한 소녀”와 “밤색 외투를 입은 젊은이”가 나타나 함께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울프는 창문에서 물러나 사색합니다. 왜 두 사람이 택시를 올라타는 모습에서 분열되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융합된’듯하였을까? 울프의 예술적 상상력은 마음과 공명하는 그 울림을 직시하고 이성적 질서를 부여합니다.
마음이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불편함, 긴장, 단절을 느끼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편안함과 ‘마음의 통일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힘, 즉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우리 인간의 내면세계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과 여성이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이는 모습에서 “비합리적일지라도 심오한 본능”인 양성성의 반응을 감지했던 것입니다.
2) 양성적 마음이란 남성과 여성이 특별한 공감대를 가진 마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하는 양성적인 마음이란 분열되지 않고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 창조적인 마음입니다. 울프는 한 남성 작가의 책을 꺼내듭니다. 책에서 강한 ‘대문자 I’를 느낍니다. 지금처럼 하나의 성이 자신의 자의식을 강하게 노출시키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이는 다른 성이 여러 분야에 진출하면서 도전받는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양성성이란 “타인의 마음에 열려 있고 공명하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고, 본래 창조적이고 빛을 발하며 분열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양성성은 위대한 마음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각자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은 교섭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남성성이 강한 책들이 광범위하게 저술되는 이유는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과 사회진출이 눈부시게 나타나는 것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의 성이 다른 성의 진출에 신경을 쓰는 시대입니다. 도전받지 않았다면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는데 도전받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반응은 더욱 감정적이고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울프는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한 남성작가(정글북의 저자 키플링으로 추측되지만 전반적인 작품을 말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의 신간 소설을 읽어봅니다. 그의 “글은 마음의 자유와 일신의 자유분방함, 스스로에 대한 커다란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마음은 물질적 풍요에서 나오며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완전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대한 자의식인 대문자 I’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문자 I’ 라는 글자의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의 형체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작가 스스로 ‘대문자 I’ 라는 글자의 지배력에 자신의 창조성을 가두고 있어 소설은 지루해졌습니다. 소설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자의식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마음속 수천 가지 생각들을 흔들어놓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성운동이 19세기가 아니라 16세기에 있었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3) 현대의 남성들은 남성적 자의식이 강한 글을 씁니다. 이런 경우 마음이 각각의 방에 갇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암시력이 결핍되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다가올 시대의 소설이 이탈리아 파시즘의 소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울프는 유명한 남성작가의 작품을 손에서 놓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의 남성은 자기 두뇌의 남성적인 면만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다른 성이 그의 글을 읽으며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부재하게 됩니다. 이런 작품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서 경험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강한 자의식의 남성성이 시, 소설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울프는 말합니다. “파시즘 시는 어떤 소도시 박물관의 유리병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끔찍스러운 발육 부전 생물”입니다. 이러한 생명력 없는 존재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자의식을 특정한 성으로 구축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4)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의 비판을 제기하고 그에 대하여 해명합니다. 자신이 두성의 장단점을 밝히지 않았으며 물질적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에 대해서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두성의 상대적인 장점, 더 나아가 작가로서 각성이 지니는 장단점에 대한 견해가 피력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겠지요” 그러나 마음의 재능을 설탕처럼 무게를 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지금은 각성의 장단점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것보다는 여성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느냐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또한 남성, 여성의 특징을 파악하고 서로의 장단점으로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것은 아주 낮은 단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는 우열을 가르고 상을 타는 것을 바라고 행하지만 성장하면 그와 같은 것을 바라며 행동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패를 받기 위하여 혹은 교장 선생님이나 교수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글을 써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이 모든 논의에서 내가 물질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여러분이 이의를 제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 버지니아울프는 아서 퀼러 쿠치경을 말을 인용하여 답합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영국의 위대한 시인들 12명 중 아홉 명이 영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 교육을 받았으며, 나머지 세 명도 빈궁한 삶과는 거리가 멀게 자랐습니다.
“요즈음뿐 아니라 과거 이 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습니다. --- 영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들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이나 없을 것입니다.” 시적인 마음을 자유롭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경제적 토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역사 이래 늘 가난한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버지니아 울프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5) 이제 강연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이제 강의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이 되기 위해서 사물을 그 자체로 자유롭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울프는 자신의 마음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다른 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거나 더 높은 성취를 이루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영국은 1866년 이래 여성을 위한 대학이 두 곳이 생겼고, 1880년 이후 기혼여성의 재산을 인정했으며, 1919년에 여성 투표권이 주어졌습니다. 연간 500파운드 이상을 버는 사람들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제 “기회가 부족하고 훈련이나 격려를 받지 못했으며 여유와 돈이 없다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손에 남게 된 시간과 여러분의 두뇌에 쌓인 학식으로 분명 여러분은 매우 길고 무척 고되며 대단히 미천한 경력의 또 다른 단계”로 나가야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시 픽션의 형식을 빌어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강연 중에 셰익스피어의 누이에 대하여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실제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분 속에 그리고 내 속에, 또 오늘밤 설거지 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이곳에 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 속에 살아 있습니다”. 시적인 마음은 죽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자유의 습성을 가지고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때 셰익스피어의 누이인 주디스가 누군가의 육체를 걸치고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