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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Dec 26. 2020

슬기로운 유목생활 - 서울에서 내 집 찾기

'주'를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

인간 생활의 세 가지 요소는 의식주라는데, '의'와 '식'에 비해 '주'는 왜 이리 얻기 힘든 것일까.

현재 거주 중인 집의 전세계약이 곧 끝난다. 계약을 연장하기엔 보증금이 오르고, 오르는 보증금을 감당하면서 살기에는 현재 거주지에 흠은 꽤 많다. 고민 끝에 또 지긋지긋한 이사를 하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고통을 모르면 겁도 나지 않기 마련이다. 상경 후 5번 이상의 이사와 각종 주거형태에서의 다사다난한 경험 때문에 '주'를 찾는 여정은 두려움만 가득하다. 전세난과 집값 고공행진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서일까? 이번엔 이 두려움이 유난스럽다.


싼 건 무조건 비지떡

이사에서 오는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은 한정된 예산이다. 아무리 극심한 전세난이라도 가진 예산만 충분하다면 못 갈 집이 없다. 서울 유목생활에서 주어진 미션은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의 매물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의'와 '식'에 비해 '주'의 가격은 합리적이다. 매물에 있어서는 동대문과 백화점에서 파는 옷이 같은 것처럼 납득이 어려운 경우를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보자. 싱글인 필자가 집을 구할 때 고려하는 5가지 기본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통근 및 통학 편의성 - 이사 동네를 정하기 위한 1순위. 대학가나 여의도/강남/광화문 등 직장가 바로 근처는 비싸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20~40분까지의 범위로 본다.  

2) 역세권 - 도보 15분 이상 거리에서 지하철로 통근해봤는데, 특히 한여름과 한겨울은 출근 전부터 진이 빠졌다.

3) 연식 - 리모델링 없는 30년 연립주택에서 산적이 있는데 미친듯한 외풍, 노후된 보일러 미지근水 및 동파, 옆집의 내추럴 사운드가 들리는 방음 등 괴로움을 겪었다. 화장실의 퀄리티도 연식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다.

4) 층수 - 저층 거주 시 사생활 보호가 어렵고, 배관을 타고 도둑이 들 것을 진지하게 염려해야 한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주변 소음과 도둑 걱정 때문에 창문을 닫고 잤다.

5) 주변 환경 - 10분 내 편의점은 필수다. 안전한 동네에 마트나 문화시설까지 가까우면 좋다.

외에도 내부 구조, 옵션, 관리비, 주차, 층고, 채광 등 까다롭게 볼 수 있는 요소는 더 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을 향한 뿌리 깊은 의심, 대출 준비,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청소, 짐 정리 등 '이사'가 포함하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어쨌든 기본만 고려하더라도 최근 부동산 어플로 탐색한 결과 서울에 있는 원/투룸 기준으로 한 개 요소를 완벽히 충족할 때마다 약 천만원씩 오른다. 요리조리 따져봐도 비싼 매물은 이유가 다 있고, 싼 매물은 하자가 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몇 개는 충족보다 타협을 하는 슬기로운 유목생활이 필요하다.


유목민의 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고생을 해서일까. 내 집 마련에 집착이 있는 편이다. 재테크 관점보다는 더 이상 옮겨 다니고 싶지 않은 목적이 크다. 하지만 잔인한 서울 집값은 자꾸만 유목민의 꿈을 짓밟는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은 현실적으로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직은 청약이 로또가 아닌 추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집값도 현실적인 구매가 가능해 보이는 덕인 것 같다. 친구들이 자가에 살면서 덤으로 부동산 재테크도 할 때, 모으는 돈마다 보증금에 묶여서 어중이떠중이가 되는 기분이 든다.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스펙?

얼마 전 대화를 나누던 중 서울 토박이 직장동료가 말했다. "목동은 은평구 아니었어? 성동구가 어디지?" 이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의 주거단지에 대해 대화를 했는데, 지방 출신들이 더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학교나 직장 때문에 계속 거처를 옮겨 다니고, 이곳저곳 알아보면서 지식이 쌓인듯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스펙이라는 말이 돈다고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월세, 관리비, 기타 생활비를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되는 말이다. 또 다른 이유를 짐작컨대, 안주할 곳 없고 다시 옮겨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끼는 것도 한 몫하지 않을까 싶다. 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이방인을 계속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 같다.


서울에 내 집은 없다

서울에 내 집은 없다. 지금도 잠시 빌린 집에서 잠시 빌릴 집을 찾아보고 있다. '다음에 빌릴 집은 지금보다 낫겠지'와 같은 설렘을 갖고, 슬기로운 유목생활을 위해 오늘도 매물을 넘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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