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버스는 왜 이렇게 늦게 와! 차 기다리느라 진이 다 빠지겠네! 한 시간을 더 기다렸으니..."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의 일성(一聲)이다.
물론,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시골 버스기사는 할머니의 말씀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 건 알고 있지만,
"어르신 버스 기다리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 대목에서는 최대한 측은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그다음은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높여서...
"아니, 도대체 어떤 놈이 한 시간씩이나 기다리라고 하던가요? 별 미친놈 다 보겠네."
" 누가 어르신한테 기다리라고 그랬는지 말씀해 주세요! 잡아다가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게..."
(위 발언은 지성인을 자처하는 시골 기사가 발언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글로 옮기기에 부적절하지만 현장감을 살리기 위하여 사실대로 묘사한 점 독자님들의 많은 양해를 구합니다..)
이쯤 되면, 할머니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 아니, 내가 잘못해서 버스를 놓쳐서 그래유! 누구 잘못 아니유! "
이 말씀도 거짓말이다. 내 앞 시간에 그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는 없다. 내가 첫 차다.
"어르신 혼자 외롭게 계시다가 말씀이 하고 싶으셔서 기사에게 말씀하시는 거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기사에게 좋은 얘기만 해주세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내가 잘못했슈!"
이로서 부조리 연극 같은 대화는 종결(終結) 되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對話 ; conversation)를 통하여 본인의 생각, 느낌, 주장 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소통(疏通 ; communication)되는 내용은 자신의 의지와 상반되게 상대방에게 전달되거나, 의미가 왜곡(歪曲)돼서 전달되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 또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오해 없이 오롯이 전달하기에는 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적절한 단어의 선택일 수도 있고, 풍부한 얼굴 표정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들은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누락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 사이일지라도 말로서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혹자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굳이 말로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경지까지 가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진실된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조차도, 산 넘고 물 건너는 고난의 연속 이건만, 거짓말로 상대방을 현혹(眩惑)시키는 일은 일반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교련시간에 사용할 M16 소총을 사야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속아주신 부모님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 주겠다는 프러포즈는 아내가 될 여자의 마음이 너그러워 그냥 넘어가 준 것이다.
거짓말도 상대방이 받아주어야 완성된다.
요즘, 우리는 위정자(爲政者)들이 내뱉는 거짓말의 홍수에 살고 있다.
그 거짓말은 과거형 일 수도, 미래형 일 수도 있다. 과거의 행위에 대한 거짓말은 화자(話者)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며, 자신의 추악(醜惡)한 과거에 대한 면피성 발언이다. 과거형의 거짓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혈압을 오르내리게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거짓말은 우리의 자손들에게 고통을 남겨줄 것이다.
문제는, 산골의 할머니는 표현만이 왜곡된 거짓말이지만, 정치가들은 시민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말은 한다는 것이다.
그 주변에 꼬이는 똥 파리떼와 같은 잘난 인간들은 그 거짓말을 논리라는 포장지로 감싸서 본질을 가리려 하고, 환형동물(環形動物)과 동급인 기레기들은 정치인들의 추문(醜聞)을 미화시키기에 바쁘다.
거짓말로 시민을 현혹(眩惑)하는 인간도 나쁜 놈이지만, 속아 넘어가는 놈은 지렁이보다 더 하등 한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