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창' 가는 길

by 한지원

"오늘은 몇 명이나 탔어요?"

시골에 사는 촌스럽고, 초라한 오십 대 아주머니 한 분의 질문이다.


'증평'에서 '오창'을 가는 노선이 있다.

하루에 세 번...

그 노선은 타는 승객의 인원수나, 인물도 항상 동일하다. 일 년 내내 승객이 바뀌거나 승객의 수가 바뀌지 않는다. 기사만 한 달에 한 번씩, 또는 사나흘에 한 번씩 바뀐다.

증평에서 오창으로 가는 길은 4차선의 신작로가 뚫린 지 오래 지났건만, 시골 버스는 시원하게 쭉 뻗은 신작로를 뿌리치고 굳이 과속 방지턱이 수십 개씩 있는 옛날 도로로 나닌다. 더구나 요즘 그 길은 상수도 공사를 위하여 깊이 파헤쳐져 있다.

버스기사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 노선은 가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과속방지 턱을 충격 없이 넘기 위하여 저단 기어를 수없이 갈아 넣느라 클러치 페달을 하도 밟아대서 왼쪽 다리가 뻐근할 지경이다.

가뜩이나 육체적인 고통에 소리 없이 몸부림치며, 가슴은 열을 받고 있는데, 훅 치고 들어온 초라한 아주머니의 질문이 시골 버스기사에게 달가울 리가 없다.

"아주머니가 그 걸 알아서 뭘 하시게요?"

"오늘 한 열명은 탔나요?"

시골 버스기사의 질문은 무시하고, 대답 대신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도대체 그걸 왜 아시고 싶은 겁니까?"

나도 모르게 질문에 짜증이 묻어 나왔다.

"타는 사람이 너무 없으면, 노선이 없어질까 봐..."

아주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그분은 이 버스를 의지해 노선상의 어디쯤엔가 존재하는, 그분의 생계를 지탱해주는 직장을 다니는 분이었다.

하루에 간신히 세 번 다니는 이 버스가 누구에게는 생존의 삶을 유지시키는 수단인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을 버스의 노선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아주머니에게 덜컹거리는 시골버스의 운행은 지상 최대의 관심사이자 축복이었다.

"최소 열 명은 넘게 탔습니다. 그리고 이 버스노선 안 없어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보다 승객이 더 없는 곳도 다 다니고 있어요"

버스 룸미러로 아주머니를 얼핏 보니, 마음이 놓이는 듯한 표정이 얼굴에 스친다.

보너스로 쐐기를 박는 발언을 한 마디 더했다.

"아주머니 그 공장에 그만 다니실 때까지 이 노선 안 없어질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고 다시 그 노선의 운행에 나섰다.

매일 검은 잠바와 뒤집어쓴 벙거지 같은 모자가 그분의 트레이드마크였지만, 오늘은 노란색의 화사한 파커와 아침 일찍 손대고 나온 듯한 웨이브 진 머리가 돋보였다.


"나 오늘 회식 있어!"

버스에 먼저 타고 있던 단골 승객들에게 묻지도 않은 말을 독백처럼 되뇌면서 버스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활기가 묻어있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오늘은 웬일로 기사의 시선을 마주치고 인사까지 한다.

'아마도 오늘 회식이 있어서 외모에 신경좀 쓰셨나 보네... 여자는 회식이 있으면 마음이 들뜨나?'

시골 버스기사는 쓸데없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 아주머니를 보면서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 아주머니의 직장이 어디에 있는지, 대우가 좋은지, 뭘 하는 곳인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 아주머니의 삶 전부는 아닐지라도, 틀림없이 그분 일생의 일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생각은 들었다.


사실 그날 그 노선에는 하루 종일 여섯 명 탔었다.

keyword
이전 15화호모 사피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