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에서 고백했듯이, 시골 버스기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예민한 후각이 골칫거리다.
시골버스 승객 중에는 기사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승객들이 있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강호(江湖)의 고수(高手)처럼, 각 노선마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승객들이 괴산 곳곳에 숨어 계신다. 이분들이 등장하는 날에는 나 만큼은 예민하지 않은 후각의 소유자인 동료기사들도 그 승객들의 위용(威容 ) 앞에 고개를 수그리다 못해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이 분들은 각각 성별도, 연령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다. 바로 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부둣가 허름한 횟집에서 나는 초고추장 냄새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날은 코끝에 밴 냄새가 대뇌의 피질 속에 각인되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풍기며 지끈지끈한 두통을 만들어 냈다.
일찍 끝나는 노선을 돌고 오는 날은 가끔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가 있다. 그날도 모처럼 식탁에 앉아 저녁을 시작하는데...
"여보, 이거 먹어봐! 싱싱해서 사봤어!"
아내는 먹음직한 생굴 한 접시를 내어 놓았다.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초고추장을 찍어 날름 입안으로 넣는 순간, 싱싱한 바다향과 함께 낮에 버스 안에서 있었던 기억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맛있지?"
나는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는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 응! 뭐 대충... 아~ 그래 맛있어! "
아내의 정성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지키는 발언을 하느라 입에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피곤하여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로 결심하고, 분노의 양치질을 마친 후 침대에 누웠다.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방울이'의 체취...
'방울이'는 우리 집에서 팔 년째 동거동락하는 샴고양이의 이름이다. 어린 새끼일 때 큰 딸애가 친구에게 분양받아온 수컷 고양이인데, 워낙에 쫄보 이어서 집 바깥으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오금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낮은 포복으로 덱크바닥을 엉금 거리면서 기어 다닌다.
이런 놈이 집안에 들어와서는 꼴에 수컷이라고 자신의 체취를 집안 곳곳에 묻혀놓곤 한다.
그것도 꼭 내 물건에...
가방, 벗어논 슬리퍼, 옷걸이에 걸어놓은 옷, 가끔씩 내가 덮고 자는 이불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딸애와 아내가 항상 지리처끼고 있으면서 귀여워해 주니, 나는 아내와 딸이 무서워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숨죽여 지낸 세월이 벌써 8년이 흘렀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고양이 나이 여덟 살이면, 사람의 나이로 오십 대 중후반쯤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놈이 나를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만물의 영장인 내가 그놈과 경쟁하여 집안 곳곳에 소변을 뿌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팬티바람으로, 국제공항의 마약 탐지견처럼 방안을 뒤진 지 5분째... 드디어 찾았다. 내 베개에서...
' 이놈이 건방지게 아빠 베개에다가 냄새를 뿌려!'
오늘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머리 위로 뻗치면서, 폼페이를 폐허로 만든, 베수비오(Monte Vesuvio) 화산의 용암이 분출하듯 분노가 폭발하였다.
헐렁한 트렁크 팬티, 목 늘어진 러닝셔츠를 걸친 반백(半白)의 배 나온 중년 사내가 다리를 벌리고 서서, 한 손에는 파리채를 거머쥐고 햄릿의 주인공처럼 대사를 읊조리고 있었다.
"오늘은 기필코 이놈을 응징하리라! 그놈이 나가던가, 아니면 내가 나가던가..."
힘주어 잡은 파리채 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두 눈이 동그란 방울이는 낌새를 눈치챘는지, 사내 눈앞에서 벌써 사라진 지 오래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대사를 한 번 더 쳤다.
" 한 개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