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의 승객은 90% 이상이 고정 승객이다.
가끔씩 뉴 페이스의 승객이 버스에 타는 경우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뜨내기손님이다.
내가 예상 하건데, 지난밤에 술을 먹었거나, 또는 자동차를 수리점에 맡겼거나...
누차 강조하듯이 시골 버스의 승객은 학생이나,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는 분들, 노인들과 외국인들이 주종이지만, 그 외에도 특별한 직업의 소유자인 승객이 있다.
바로 '요양 보호사'란 직업을 가진 분들이다.
시골 외딴 마을에는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 특히 노인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의 손과 발이 되어드림은 물론이요, 말동무나 밥 같이 먹는 식구 같은 역할을 하는 분들이다. 생계수단으로 하시던, 봉사의 정신으로 하시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선택이 불가능한 직업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이분들의 활약이 농. 어촌 노인 자살률의 통계수치를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분들의 이동수단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시골 버스이다. 시골살이의 넉넉지 못한 살림 때문에 생활비를 보태려 나오신 분들도 다수이어서 자동차를 따로 굴릴만한 여력이 안 되는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이 분들은 보통 하루에 두. 세 곳의 독거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분들의 집을 방문한다. 도시 같이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된 것도 아니요, 대중교통이 편리한 것도 아니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닐 때마다, 그나마 저렴한 대중교통이라는 명패를 간신히 달고 있는 시골 버스의 힘을 빌리는 분들이다.
보통 읍내에 '차부(車部)'라고 불리는 곳에 가면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읍내에서 좀 떨어진 시골 마을을 가려고 하면, 메타기 요금으로도 2~3 만원은 기본으로 나온다. 이분들 하루 벌이의 상당 부분을 택시비로 지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중간에 '기골'이라는 외 딴 마을을 한 군데 걸치는, 괴산읍에서 청천면을 오가는 노선이 있다. 괴산읍에서 외부로 나가려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보통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괴산이 그렇게 생겼다.
괴산 터미널에서 청천면을 가려면 '굴티재'란 고개를 넘어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숨이 헐떡거리는 버스 엔진 소리를 들으면서 넘어 다녔으나, 다행스럽게도 터널이 개통되면서 이제 그 짓은 안 하게 되었다. 단지, 터널의 입구와 출구가 산 중턱에 있어서 입. 출구 쪽에 빙판이 생기거나, 터널 내에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것이 좀 흠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오는 겨울에 꼬불거리는 고갯길을 넘지 않게 된 것 만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굴티재 터널을 사이에 두고 문광면 양곡리와 청천면 지경리란 마을이 있다. 이 두 마을을 들르는 비교적 젊은 요양보호사 한 분이 계신다. 보통 오전 일찍 터널 입구 쪽의 마을에 하차하고, 오후에는 출구 쪽의 마을에서 승차하신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돌보시는 분들이 터널 양쪽 마을에 계신가 봅니다."
"네! 양쪽 마을에 방문하는 집이 하나씩 있어요!"
"그런데 버스 시간은 딱딱 맞습니까?"
두 마을을 어떻게 옮겨 다니시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말이다.
"아니요! 잘 안 맞아요! 그런데 이 터널이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버스 타고 다니셨을 텐데... 터널 새로 생긴 거 하고 관계가 있습니까?"
"버스 놓치면 이쪽 마을 일 끝내고 저쪽 마을에 갈 때는 고개를 걸어서 넘어 다녔는데, 이제는 터널만 통과하면 되니 참 감사하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넘어가려면 족히 3~4km는 걸어가야 되고, 터널을 통하여 가려고 해도 길이 500m짜리 터널과 진입로를 포함하여 최소 1km 이상은 걸어야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데...
" 걸어 다닐만하세요? "
" 네! 겨울에는 걸어 다닐만해요! 걸으면 몸이 더워져서... 여름에는 많이 더워요! "
대답하는 얼굴에 세상을 달관(達觀)한 듯한 미소가 언뜻 보였다.
그날은 바람도 많이 불고 추운 날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그 시각 온도가 -10°C를 나타내고 있었다.
청천에서 출발하여 그 터널을 넘어오는데...
유튜브에 떠도는 터널 내 심령사진처럼, 내쪽 차선 가장자리로 시커먼 물체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 요양 보호사였다.
나는 최대한 반대편 차선으로 버스를 붙여서 천천히 몰았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덜 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