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원 Apr 28. 2024

<低音이 있는 세상>

 아주 먼 옛날이야기에는 항상 등장하는 소품 및 인물들이 있다.
 첫째, 어두운 산속에 호롱불 하나만 밝히고 있는 외딴집이 등장하고, 둘째 그 집에는 한결같이 미모의 과부가 홀로 살고 있으며, 셋째 과거에 낙방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선비가 꼭 있다. 이 선비는 어두운 산길을 헤매다가 호롱불이 켜진, 하필 그 외딴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선비가 산속의 외딴집을 발견하기 전 호랑이를 만나면, 이야기의 결말은 아무도 짐작하기도 어려운 파국으로 내 달릴 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네 번째로 등장하는 호랑이는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정도의 높은 지능을 소유하고 있으며 항상 굶주려 있다.
이런 옛날이야기에서는 똑똑한 선비가 말로써 호랑이를 제압하여 호랑이로 하여금 가난한 선비를 대신하여 경제활동을 하게 하고 선비는 빈둥빈둥 놀면서 미모의 과부와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사실, 나는 너무도 부러워서 선비에게 샘이 날 지경이다.

'소리가 전달된다'라는 의미는 소리가 공기를 진동하여 일으킨 파(wave)가 파동(波動)을 일으켜 에너지와 운동량이 매질을 통하여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물론 소리뿐만 아니라 빛이나 전파(電波, radio waves)도 파동(波動)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개념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되더라도 크게 괘념치 않으셔도 된다.
어찌되었건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하여 파동을 일으키며 전달되는데, 골치가 아픈 이론을 물리공식으로 하나만 표현하자면...

f=V / λ

f : 주파수(frequency)
V : 빛의 속도(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physical constant)
λ : 파장(波長 / wave length ; 람다, lambda)

 위의 식은 주파수와 파장과의 함수관계를 나타낸 수식으로 주파수와 파장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내용이다. 주파수(f)는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것처럼 파(wave)의 진동수이고, 파장(波長)은 말 그대로 파의 길이이다.
 예를 들면, 소프라노 가수의 소리는 주파수가 높은 대신에 파장이 짧고, 저음 베이스의 소리는 파장이 길며 주파수가 낮다.
 고음(高音)은 파장이 짧고 주파수가 높다. 저음(低音)은 고음과는 반대로, 파장은 길며 주파수는 낮다. 주파수가 높은 고주파의 소리는 매질(媒質 ;파동이 통과하는 물질)이 공기(空氣)일 경우 소리의 변형이나 에너지의 큰 손실 없이 전달되지만, 매질이 공기가 아닌 액체 또는 고체를 통과하면서 에너지가 다량 손실되기도 하고, 방향이 왜곡되어 제 정확한 소리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저주파의 낮은 소리는 매질이 공기가 아닌 액체나 고체의 경우에서도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여 고주파보다 소리를 잘 전달한다.
  이 현상을 우리의 실상에서 살펴보면, 무도장에서 쾅쾅 울리는 베이스의 저음은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까지도 쿵쿵 울리지만, 틱틱거리는 고음은 귓가를 맴돌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특히, 예전에 많은 주부에게 장바구니를 옆에 끼고도 다시금 찾게 하였던 인기 있는 카바레(cabaret)의 영업비밀 중 하나가, 비싼 비용을 지불해가면서도 설치했던 저음이 웅장한 스피커에 있었다고 하였다.
  그 놈의 웅장한 저음이 대한민국 주부들의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호랑이, 과부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물리수식이 등장하는지에 의아하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포효(咆哮)는 듣는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청주파수를 넘는 초저주파 저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 초저주파의 저음이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여 호랑이의 먹이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호랑이를 말로써 제압했다던 선비의 이야기는 구라이며, 낙방한 선비는 미모의 과부와 하룻밤도 지내보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잡혀먹혔을 확률이 99.99%이다.

  우리의 모든 어머니는 아기를 배속에 잉태했을 때 태교라는 것을 한다. 좋은 생각을 한다거나 태교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아기의 어머니가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양수에 두둥실 떠있는 태아에게 직접 음악을 들려주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도 저주파가 등장한다. 태교 음악이 양수를 통과하려면 고음보다는 저음이 유리하다. 엄마가 말하는 백 마디 고음보다, 아빠의 한마디 저음이 양수를 통과하여 아기에게 전달될 확률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불룩하게 나온 배를 보며 해주는 아빠의 이야기보다 더 좋은 태교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엄마 뱃속의 아기는 아빠가 해주는 말의 내용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고, 웅웅거리는 아빠의 저음에 반응한다. 그리고는 그 아기는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편안한 공간과 시간을 어머니의 자궁에서 느끼게 된다. 양수에 떠있는 아기는 세상의 모든 소음들 중 날카로운 고음은 양수에서 걸러지고, 웅웅거리는 저음만이 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내가 몰고   다니는 고속버스는 고배기량의 엔진이 장착되어 있다.
이 엔진은 저속회전에서도 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된 엔진이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속력에서도 엔진의 회전수는 1,500rpm(분당회전수,revolutions per minute)을 넘지 않는다. 엔진이 저속으로 회전하니 높은 주파수의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버스 내부로 들어오는 엔진의 소음은 웅웅거리는 저음이 대부분이다.
 이 소리는 버스를 타고 있는 승객들을 엄마의 자궁 속 아기 시절로 돌려보내고, 버스 안을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그 승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버스에서 예전 아기 때의 표정으로 깊은 잠을 잔다. 의미 없는 수다를 떨었던 아주머니도, 행복에 겨워 깔깔거리는 웃음을 흘리던 여학생도, 에너지 넘치던 군인 총각도 모두 깊은 잠을 잔다.

그리고...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세상을 룸미러로 보는 고속버스 기사는 저음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나 홀로 고독하게 깨어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도 사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