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癡呆)

by 한지원

치매(癡呆)는 기억을 하고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장기적으로 점차 감퇴하여 일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에 이르게 된 넓은 범위의 뇌 손상을 의미하며, 인지기능의 손상 및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치매`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위와 같은 내용으로 기술하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은 기억이다. 기억은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며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앞으로 도래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이었다.

선사시대 (先史時代)에는 그림을 암벽에 새겨서, 역사시대 (歷史時代)에는 문자로, 선조들이 경험하고 습득한 지식을 후손들에게 전수시켰다. 현대의 문명과 지식은 인간 각 개인의 기억을 기록하고 이것을 누적시킨 결과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를 인식하고 현재를 통하여 미래를 예측하도록 함으로써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아름답고 아련한 과거의 추억은 고단한 현재의 삶을 미소 짓게 만들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시간이란 강물처럼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주(宇宙, universe) 공간에 단면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우주 공간에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과거의 시간들이 오롯이 나의 기억에 의지해 내 삶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그 연약한 기억력이 제 구실을 못하는 날, 나는 우주의 미아처럼 검은 공간을 헤맬 것이다. 순간적인 기억상실증이 아닌 점진적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라면...
진정 나의 실체를 부정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내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날 배차는 원점회귀 노선이어서 괴산에서 출발한 버스가 주변 마을들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괴산 터미널로 들어오는 노선으로 하루에 총 여섯 번을 왕복하는 그런 노선이었다.
" 나 내려야 되는데..."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버스를 세웠다.
"어르신 여기 마을도 없는데, 여기 내리실 거예요?"
나는 버스 문을 열어 드렸다. 버스 계단을 반쯤 내려섰는데...
(버스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저 할머니 여기가 아닌 거 같은데..."
"어르신 여기 내리시는 것 맞아요?"
가부 대꾸가 없었다.
"다시 올라오세요!"
그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버스로 올라와 자리에 앉으셨다.
그 아주머니에게 "할머니 댁이 어딘지 아세요?"
"저 앞산 돌아서서 있는 첫 번째 마을이 저 양반 사는 마을인데, 여기서 내릴라고 하시네..."
그 마을에 도착하여 그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나는 다시 괴산 터미널로 돌아왔다.

오후 운행시간이 되어 종전과 동일한 노선으로 버스를 운행하여 그 할머니가 내리시던 마을 승강장을 지나는데, 그 할머니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어르신 읍내 가시려고요?"
버스 안은 나와 할머니 둘만 있었다.
"아까 수도꼭지를 사 왔는데 안 맞아서 다시 바꾸러 가유!"
"오전에 왜 거기서 내리려고 그러셨어요?"
"나도 몰라요! 왜 그랬는지!"
정신이 돌아오신 것 같아서 할머니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화를 하였다.
고향은 충북 진천이라 하셨다.
재산이라고는 산 밑에 손바닥 만한 밭 한 뙤기밖에 없는 괴산 산골 6남매의 장남에게... 꽃다운 나이 19세에 시집와서,
영감은 나이 마흔도 안돼서 저 세상으로 가고, 자식들과 먹고 사느라 허리가 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일을 하여 아들 둘에 딸 둘, 이렇게 넷을 키웠단다. 십 년 전쯤에 작은 아들은 사고로 죽고, 큰 아들은 젊어서 중동에 돈 벌러 갔는데, 한국에는 일 년에 한 번은 오더니, 2년 전에는 며느리마저 같이 가서 요즘은 전화 연락도 자주 안 한다고...
`코로나 때문에 못 온다고' 전화 온지도 1년이 넘었다고 하였다. 딸들은 코빼기 본지 수년 째고...
코로나 때문에 마을회관도 문 닫아 하루 종일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1년 전부터 우울증 약을 먹었는데, 가끔씩 정신이 멍할 때가 있다고 했다. 당신 본인도 치매를 걱정하시는 눈치였다.
"어르신 부끄러워 마시고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가서 치매 검사받아 보시구요, 주소하고 이름 쓴 목걸이 하나 만들어서 갖고 다니시다가 버스에서 어디에 내리시는지 생각이 안 나시면 기사한테 보여주세요"
어르신 흰자위가 벌겋게 상기되면서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혼자 사시는 분이 생필품이라도 사러 읍내에 버스 타고 나오셨다가 요즘 같은 영하의 날씨에 집을 못 찾으실까 봐 주제넘은 걱정도 하였다.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는 정상이다.
그러나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치매 환자이다.

<나는 치매 환자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란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우리는 버스의 노선을 모릅니다.
어디서 내려야 되는지를 모릅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나도 그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버스를 왜 탔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릴 곳의 주소도 없습니다.
당연히 주소를 적은 이름표도 없겠지요!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안 납니다.
나의 옛날 얼굴이...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말을 들어줄,
내가 내려야 할 곳에 문을 열어줄,
버스기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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