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커피 한 잔 해!

by 한지원

"어이! 커피 한 잔 해!"
진짜 맘에 안 드는 놈이다.
대충 봐도 나보다 적게는 일곱여덟 살, 많게는 열 살 이상 어린놈이 나를 만나면 꼭 반말이다.' 날 언제 봤다고! '
다니는 행색도 맘에 안 든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복장은 아래위가 하나로 붙어있는 점프슈트(일명 스즈끼복 )를 입고 있고, 항상 그 위에 '안전'이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걸쳤다.
누가 보면 도로공사 교통통제하는 놈인 줄 알 거다. 그리고 맨날 터미널에서 죽치고 산다.

버스기사 초년병 시절에...
" 한 기사 인사드려! 칠성 사시는 분인데, 우리 고객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한지원입니다." 머리를 숙여서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놈 왈" 아냐 나는 몇 번 봤어..."
지금에야 얘기지만 "우리 고객"이라는 단어에서 눈치챘어야 했는데... 선배 기사가 나를 놀려 먹으려고 인사시킨 거였다.
우리 고객, 즉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이라는 뜻이다. 진즉에 말씀드렸듯이 시골에서 젊은 놈치고 버스 타고 다니는 놈은 2% 부족한 놈이다. 그래도 이 친구는 그 정도는 아니고 1.5% 정도쯤 되는 것 같다.
그놈과는 그렇게 첫 대면을 시작했다.
괴산 터미널에 유일무이한 200 윈 짜리 커피자판기 앞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300원짜리 메뉴도 생긴 지 며칠 안된 거다.
'어이! 커피 한 잔 해!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200원짜리 커피 한잔에...
그날부터 시골버스기사의 인생은 그놈에게 저당 잡혔다.
깨달음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어떡하면 그놈의 레이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터미널 홈에 버스를 대고 기사 휴게실로 들어가기 위하여 버스를 내려서는 순간 어디서 왔는지 귀신같이 나타나서 바로 그 멘트를 한다.
"어이! 커피 한 잔해! "
'혹시, 이놈이 하루 종일 나만 관찰하나?'
아무래도 피하기보다 부딪쳐서 담판을 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놈의 나이를 알아내어 야단칠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동료기사들 중에 그놈의 정확한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괴산에서 수안보 쪽으로 가다 보면 연풍이라는 면소재지가 있다.
연풍에서 승차하는 아가씨가 한 사람 있다. 나이가 서른 하나라고 그랬다. 내가 어떻게 아느냐? 그 아가씨가 말해 주었다. 설마, 지각이 있고 매너를 갖춘 시골버스기사가 숙녀의 나이를 함부로 물어봤겠는가!...
이 아가씨 트렌짓 코트에 선글라스만 안 썼을 뿐이지 마타하리다. 사진기 같은 관찰과 기억력으로 버스기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기사에게 현장 중계한다. 이 아가씨의 지정석은 앞문 바로 뒤에 있는 자리다. 여기에 앉아서 기사가 거쳐야 하는 마을을 빼먹고 가는지, 과속하는지, 신호 위반하는지, 방지턱을 험하게 통과하는지 등을 일일이 다른 기사에게 보고 한다. 그래서 이 아가씨가 승차하는 날이면 나는 수도승의 자세로 핸들을 잡는다. 이 아가씨도 2%는 아니고 1.5% 정도 부족한 사람이다.

마지막 코스는 승객이 거의 없다. 보통 혼자 노선을 돌고 오다 보니 버스 오디오 볼륨을 크게 하고 Go west( Pet Shop Boys 버전이 나는 좋다)나 Queen의 Don't stop me now 등을 들으면서 마지막 코스를 돌고 오면 낮에 하루 종일 노인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그날도 칠성, 연풍을 거쳐 수옥정폭포까지 갔다 오는 마지막 운행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터미널에서 승차하였다.
그놈과 그 아가씨.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였는가?
하여간 두 사람 덕분에 소소한 기쁨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1.5% + 1.5% 합계 3%가 버스에 승객으로 탓으니 나는 침묵의 수행하는 수도승의 자세로 부지런히 버스의 엑셀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이 칠성 가기 전 두천리에서 하차하였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연풍 아가씨에게 말을 건넸다.
"아가씨 내가 말 놔도 되지?"
"네"
나는 평소에 학생 등 나이 어린 승객에게도 경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버스에 둘 밖에 없었고 편안하게 물어봐야 대답을 잘할 것 같았다.
"지금 내린 아저씨 몇 살인지 알아?"
연풍 아가씨와 그놈이 터미널에서 둘이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질문을 했다.
" 그 아저씨가 기사 아저씨보다 더 먹었어요!"
아니, 내 질문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놈이 벌써 나의 의중을 눈치채고 손을 썼단 말인가? 귀신이 곡 할 노릇이었다.
"내가 몇 살인데?... 아가씨는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잖아?"
"내가 기사 아저씨 나이를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왜 저 아저씨가 나 보다 나이가 더 먹었다고 생각했어?"
" 그 아저씨는 결혼했어요"
아니, 이게 무슨 장똑 깨지는 소리래! 물어본 내가 죽일 놈이지!..
주제를 바꾸어 " 저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야?"
"자활센터 직원이에요"
"직원? 거기서 뭐 하는데?"
"쇼핑백이나 봉투 만들어요!"
나는 그놈이 원피스 점프슈트에 노란 조끼를 걸치고 봉투에 풀칠하는 광경을 상상하니 끓어오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그놈의 신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내가 한심스러워 보여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연풍 아가씨에 대하여 신상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이모하고 둘이 산다고 했다. 이모의 나이는 칠십 정도 되었고, 이모님이 무릎이 안 좋아 걷지를 못해 본인이 청소, 설거지, 빨래 등 집안 살림을 다 한다고 했다.
고향은 서울인데 도봉구 쌍문동이랬다. 부모님은 서울에 남동생과 살고 있는데, 왜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사를 갔는데 이사 간 집 주소를 안르쳐 줘서 못 간다고 했다. 비정한 부모가 시골 먼 친척집에 부족한 딸을 버린 것이다. 이모에게 부모님 주소를 물어보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이모는 말도 못 꺼내게 한다고 한다. 엄마, 아빠 보고 싶지 않으냐고 질문하니 대답이 없다. 왜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 얘기를 듣는 내 가슴이 뻐근하다.
'그래! 그놈도 뭔가 사연이 있겠지!...'
'그놈도 내가 좋아 보여서 나한테 잘해주려고 했을 거야...'
그래서 그놈하고 매듭지려고 했던 일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
'까짓 거 커피 사주면 먹고...'
아니, 내가 한 잔 사줘야겠다. 삼백 원짜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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