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쓰인 글은 마음을 우려낸 향기로운 차와 같다.
향기로운 녹차는 순수한 녹차 잎만을 우려서 만든다.
녹차에 맛을 더한다고 설탕을 가미한다거나, 크림을 넣어서 마시지는 않는다.
순수한 녹차 잎만을 우려야 제대로 된 차 맛이 난다.
차원이 다른 얘기지만, 녹차물에 밥 말아서 반찬으로 굴비를 뜯어먹기도 한다마는...
우리는 흔히들 '가슴에 손을 얻고 생각해봐라'라고 하지 '머리에 손을 얻고~'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머리로 쓰는 글은 학자들이 쓰는 논문이나, 전문가들이 쓰는 보고서로 족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동화할 수 있는 글은 오롯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 이어야 한다.
올바른 판단을 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식에 어긋나는 최근 판결문들, 신과 종교에 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일부 신앙인들의 일탈된 모습들,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잔인하게 양녀를 살해한 젊은 부부.
그리고 자신만의 호화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세상에 악행을 저지르는 위정자들과 이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무리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하고, 그에 대한 분노가 파장을 일으켜 나의 마음을 출렁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 내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시골버스 승객들의 따뜻하고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자 페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이 따뜻해야 가능한 일이다. 내 마음이 따뜻하지 않으면 내가 마주한 모든 사물이 차가워진다. 내 마음이 선하지 않은데 마주한 사람의 순수한 마음이 보이겠는가? 내 마음이 분노로 차 있는데 이 세상이 제대로 보이겠는가?
시골버스의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조금씩 부족하다.
육체적 이거나, 또는 정신적으로 조금씩 부족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 의사소통이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앞에서 말한 핸디캡을 여러 개 갖고 있거나...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누군가가 채워야 할 부족분이지만,
차가운 마음으로 대하면 나를 귀찮게 하는 군상들이다.
어둡고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을 우려내면 향기로운 글이 아니라, 날카로운 칼을 품은 독이 나온다. 그 날카로움은 칼끝이 향한 사람에게는 도달하지 못할뿐더러, 정작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하며 본인도 그 칼에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마음속에 독한 단어들만 생겨나며, 그것을 글로 옮기고자 하는 욕망이 화기가 되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평형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동하며, 우주의 에너지가 소멸될 때까지 영원히 진행한다고 하는데 나는 도대체 몇 살이나 더 먹어야 맘속의 화기가 가라앉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