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구산 천문대

by 한지원

괴산의 시골버스는 지금 솟점말(솥점말)이라는 곳에 와 있다.
예전에 솥을 만들던 골짜기에 있던 마을이라 하여 '솥점마을'에서 솟점말로 됐다는 얘기가 있다. 참 이쁜 지명이다.
증평군에는 거북이가 앉아있는 형상의 '좌구산(座龜山)이라는 그리 높지 (657m) 않은 산이 하나 있다. 그러나 청주나 증평 등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증평군에서 이 산을 휴양림으로 조성하여 군민들의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고, 솟점말은 이 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괴산군 버스가 남의 동네인 증평까지 운행되는지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증평군은 원래 괴산군 증평읍이었다. 그 이후 증평군으로 독립되어 떨어져 나왔지만, 생활권이 괴산군과 겹치는 부분이 아직 많이 있다.
이 좌구산 정상에는 천문대가 있는데, 일반인에게 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금도 운영되는지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우리 작은놈 초등 3년 때쯤 아들과 같이 그 프로그램을 통하여, 내 나이 쉰이 넘어서 여기서 처음으로 제대로 별을 보았다.

도시에서의 나는..., 세상의 미래만을 보고 살았다.
회사의 매출, 선물시장(先物市場, futures market)의 동향, 제품의 검사성적서(mill sheet)등...
우리 회사가 앞으로 장사가 잘 될 건지, 우리가 매입할 물건의 값이 어떻게 변할 건지, 우리가 팔아먹은 물건이 제품으로 하자 없이 잘 생산이 될 것인지...
과거는 볼일이 없었다.
과거란 실패사례만 끄집어내어 미래를 대비하는 수단으로 밖에 쓰지 않았으니...
나는 우리 회사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것이 곧 나의 미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과거만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있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앞을 한 치도 알 수가 없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빛의 속도를 추월할 수 없듯이,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인간이 지닌 한계(限界)이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을 전제로 한 추론과 희망일 뿐이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있었을까?
가스실의 죽음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신께 선택받았다던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선민사상(選民思想)이 틀렸다는 생각을, 가스로 숨이 막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못 했을 수도...

터미널에 버스에 버스가 도착하면, 다음날 사용할 연료를 가득 채우고 환전기(換錢機)를 분리하여 사무실에 보관시킨 후 퇴근하기 위하여 터미널 넓은 주차장을 나온다.
오늘 하루 무사히 운행을 끝낸 것에 감사하면서 머리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 무한한 검은 공간을 응시한다.
괴산의 밤하늘은 유난히 더 검다. 머리 위로 별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은하수가 눈에 들어온다.
그 은하수 한쪽 구석에 처절하게 왜소한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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