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래 사진의 가방을 들고 다닌다. 2년 전에 아내가 정부에서 하는 통계조사 아르바이트한다고 군청에서 지급받았던 가방인데 튼튼하고 주머니도 많아서 내가 잘 쓰고 있다.
예비 기사 때부터 들고 다녔는데, 한 달쯤 전에 고정 기사로 발령받아 내 전용버스가 생겼지만 개인물품을 버스에 두지 않고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닌다.
가방 속에는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 병과 예비용 안경, 쉬는 시간에 읽을 책 한 권, 그리고 거대한 내 몸을 지탱해줄 간식(초코바)등... 특히 들고 다니는 책은, 운행 사이 휴식시간에 나의 정신적인 배고픔을 채워주는 간식이어서 소소한 즐거움을 나에게 준다.
내가 근무하는 버스회사에 같은 동네(칠성면) 출신 후배 기사가 한 명 있다. 예전에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도 지냈던 친구다.
고향에 돌아와서 시골 버스기사를 한다.
잘 생긴 외모에, 큰 키, 주변 사람들과의 원활한 관계, 모나지 않은 성격, 특히 선배 기사들에게는 깍듯한 예의범절로 칭찬이 자자한 친구다. 이 친구가 나 하고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나를 동네형, 회사 선배로 깍듯이 형님 대접을 하는 바람에 외지인이라고 나를 맘먹던 나보다 한, 두 살 적은 칠성면 토박이들이 이 친구 덕분에 한 번에 평정되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 친구 나를 좋아해서(나도 이 친구가 편하다) 그런지 가끔씩 그 가방에 간식을 다른 기사들 몰래 넣어주곤 한다.
"형!"
"왜?"
"가방 좀 열어봐!"
한 손에 뭔가를 들고 나에게 얘기하길래, 가방의 지퍼를 밀고 가방을 벌였다. 검은 비닐에 싼 덩어리를 다른 기사가 볼까 봐 황급히 넣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꼭 혼자만 봐! 알았지!"
"알았어!"
버스 운행이 끝나고 한가한 시간에 가방을 뒤져 비닐을 열어보니, 누런 금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이게 웬 일 이래!'
그때...
'띠리 리리~오전 다섯 시입니다.'
휴대폰 알람 때문에 잠에서 깼다. 분~하다...
꿈 해몽을 검색하니 횡재수가 있어 복권을 사면 틀림없이 당첨될 꿈이라 했다. 그 날로 거금 만원을 들여 로또복권 두장을 구매하여 가방에 넣어 놓았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가장 어렵고 골치 아픈 과목을 고르라면 물리와 수학이 단연코 투 톱일 거다. 그런데 동급생들 중에 과학이나, 수학을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말하는 별종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특히, 물리학은 멋은 있으나 사랑하고 싶지 않은 과목임에 틀림없다.
역학(mechanics)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력, 가속도 등 거시적 세계를 다루는 고전역학 (古典力學, Newton역학)과 원자, 전자, 중성자 등의 미시적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量子力學)으로 나눈다.
고전역학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인을 알고 관련하는 모든 변수를 측정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세계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예상 값과 결과값이 차이가 날 수밖에... 그러면 카오스(chaos) 이론을 들먹이면서까지 짜 맞추려 했지만, 제대로 들어맞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의 힘이 존재한다고 추론하였다. 이때 등장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이다.
고전역학으로 맞지 않은 현상은 양자의 세계로 불러들여 소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결국은 두 이론의 매듭을 짓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치열한 연구가 있었고, 그 선두에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통일장 이론 완성을 위하여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그가 평생 동안 그렇게 원했던...
이 세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하나의 방정식을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고 아쉽게도 생을 마감하였다.
이런 골치가 아픈 이야기를 지금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까지는 뉴턴의 고전역학이 우리의 세상을 해석하고 지배했다.
고전역학의 핵심은 '우리의 삶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나이가 먹어감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도 맘에 들도록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없다.
결국은 내 인생의 설계부터 잘못됐다는 이야기인데...
'잘 됐건, 안 됐건 전부 본인 탓이니 남을 탓하지 마라'. 사실 이런 이야기다. 어쩌면 서양 기독교의 가톨릭과 닮았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등장은 우리에게 화려하지 못한 인생을 변명할 기회를 제공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내세워 모든 현상을 확률로 표현한다. 밤새 시험공부한 학생이 시험을 잘 본다는 보장이 없다. 시험을 잘 볼 확률의 수치가 높을 뿐이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성공한 인생을 자랑하거나 자만한 지 말고, 실패한 인생이라 좌절하거나 기죽지 말라고 한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하는 경계도 명확하지 않다. 존재와 비 존재도 확률로 따진다. 보름달을 보고 있는데 그 보름달이 존재할, 또는 비 존재할 확률은 50%대 50% 다. 달을 안 보고 있으면 달이 존재할 확률은 0%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로또(확률)다. 그렇다고 성실하게 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나도 누구보다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가 원한다고 꼭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싫어한다고 피해지지도 않는다. 이 점은 동양의 노자가 주창한 도가사상이나 불교와 닮아 있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로또복권이 당첨되었다.
액수는 정확 치는 않지만 30억 정도 될 것이다. 단지, 내가 인출해서 쓰지 않고 있을 뿐이다. 상상이 아니고 진짜 당첨됐다.
내가 당첨됐다고 믿으면 당첨된 거다. 나는 복권 유효기간까지 절대로 확인 안 할 거다. 내가 확인 안 하고 가방에 있는 동안에는 당첨된 로또복권이지만, 확인하거나 관찰하는 순간, 당첨된 내 복권은 낙첨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인간은 너무도 거대한 신과 같은 존재여서 확인이나 관찰처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물질들의 운명이나 특성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