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새벽에 버스를 몰고 첫 행선지로 나선다. 바깥은 영하의 기온이고, 버스 안은 히터를 최대한으로 틀어놓아 히터 휀 돌아가는 소리가 버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시골길 버스 승강장에 부스스한 얼굴의 학생 한 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학생 인사 소리)
'안녕하세요! '(요금 단말기 기계음)
'안녕!' '(기사 인사 소리)
학교 등교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는 시간이나, 한 시간 만에 한 번 오는 버스여서 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 학생은 지각이 뻔한 노릇이니, 잠을 줄여서 첫차를 탄 것이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얼마나 나오고 싶지 않았을까?
단 일. 이십 분 만이라도 더 자고 싶었을 거다.
혹시, 저 친구는 부모는 도시로 돈 벌러 나가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조손가정의 학생이 아닐까?...
괴산은 번듯한 고등학교라곤 군청 소재지에 있는 괴산고등학교 하나가 전부다. 일부 학생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기숙사에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집에서 등. 하교를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부모들이 자가용으로 등. 하교를 시키던가 여의치 못한 학생은 버스시간표에 등. 하교 시간을 억지로 맞추어 버스를 타고 다닌다. 시골 버스가 으레 그렇듯 5~10분마다 오는 것도 아니요, 한번 타면 학교 앞까지 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시골버스 노선은 학생을 최우선으로 버스시간표가 짜여 있고 배차 표에는
'~학생 인수' 또는 '~학생 인계'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만일, 그냥 통과해서 학생을 못 태우게 되면 다시 돌아가서 태우고 와야 한다.
감각기관도 유전이라고 했던가...
청각은 형편없어서 얼마 전 건강검진에 청력검사 중 간호사가 남보다 청각 테스터기 볼륨을 2~3단계 올려서 검사를 마쳤고, 눈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사용했고, 이제는 노안까지 왔으니...
더구나 얼마 전에는 눈에 커다란 벌레가 보이길래 진찰을 받아보니 '비문증'이라고 수정체 안에 단백질이 뭉쳐서 눈앞에 검은 물체가 움직이듯 보인다고 한다. 의사 왈 "조금 지나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집니다 " 그래서 그런지 2년이 지난 지금은 별로 거북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후각만큼은 아직도 민감한 성능을 자랑한다. 집에 키우는 고양이가 집구석 어디엔가 소변을 봐도 그 냄새를 맡은 귀신같은 내 코가 그 장소를 찾아낸다. 아이들이 아빠의 후각은 할머니 같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 예민한 후각은 나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버스기사가 직업인 나에게는 예민한 후각이 골칫거리 일 때가 가끔 있다. 짙은 향수 냄새나 오랫동안 씻지 못한 몸에서 나는 냄새, 버스에서 승객이 먹는 음식물 냄새 등...
특히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버스 내에서의 음식물 취식은 냄새뿐만 아니라 감염예방에서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괴산의 유명한 시골 통닭집이 있다.
T.V 에도 몇 번 나온 집이다. 이 집의 주메뉴는 닭날개 튀김인데, 양념이 비법인지 아니면 숙성한 닭을 사용했는지, 진한 냄새가 특징이어서 먹을 때 주변에 냄새가 풍긴다. 특히 나는 그렇다.
밀폐된 버스 안에 갑자기 그 냄새가 풍기기에 고개를 들어 룸미러로 승객석을 보니 젊은 할머니 두 분이 열심히 닭다리를 쩝쩝거리면서 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사 "할머니 버스 안에서 뭐 드시면 안 돼요! "
할머니 "배가 고파서"
기사 " 몇천 리 가세요? 30분짜리 노선인데, 그 사이 굶어 죽나요?"
할머니(옆분에게) " 먹지 말래! "
기사 "두 분 다 드시지 마세요!"
할머니 "...."
괴산은 치킨이나, 피자, 족발 등을 먹으려면 읍 네로 나와야 한다.
배달이 안 되는 동네니 집에서 시켜 먹는 것은 대량이 아니 경우 불가능하다고 보면 맞다. 들에서 일하다가 '짜장면 5그릇, 짬뽕 5그릇 ' 뭐 이렇게는 가능하다. 피자집 사장이 미치지 않고서야
피자 한판 들고 몇 십km를 가서 배달하고 오겠는가?
그래서 읍내 나간 가족 중 엄마나 아빠가 사 가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후 6시쯤 무렵에 터미널 승강장 홈에 버스를 대고,
기사 휴게실에 잠깐 들렀다가 버스 운전석에 앉는데 피자 냄새가 버스 안에서 풍겨 나왔다. 컴컴한 버스 뒷좌석에 학생이 앉아 있었다.
기사 " 학생! 버스 안에서 음식물 먹으면 안 돼요! "
학생 " 먹는 거 아니고요 사 가지고 가는 거예요! 집에 가서 동생하고 먹으려고요! "
버스 안에 실내등을 켜고 룸미러로 학생 얼굴을 보았는데 배시시 웃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무릎 위에 피자박스를 얌전히 올려놓고 있는 폼이 남학생이어도 귀여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첫차 타던 그 앳된 학생얼굴이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더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