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버스 기사라고 항변 하지만, 내가 몰고 다니는 버스에는 시내버스라고 써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골버스를 시내버스로 여긴다. 그러나 호박에 그은 검은 줄 몇 가닥으로 호박이 수박이 될 수 없듯이 괴산의 시골버스는 주홍글씨의 낙인처럼 버스 전면 유리에 행선판을 달고 다니며, 그 행선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골버스라는 인식을 되새김질시킨다.
세종대왕께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세상은 조선의 백성 모두가 글을 읽고 쓰도록 하여, 글을 모름으로 당하는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에 그 내용을 소상히 밝힌 것도 후세의 위정자들이 아전인수격 해석함을 예견하여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지금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문맹률(文盲率)은 1% 대로 세계 OECD 국가 중 최상위에 속한다. 대왕께서 지하에서도 기뻐하실 일이다. 문맹률과 반대의 개념으로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문해율 (文解率 : 글을 읽고 이해하는 비율)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문해율은 아이러니하게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맴돌고 있다고 한다. 어느 사회의 조직이건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비법을 은밀하게 세습시키기 위하여 그들 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자와 언어를 갖기를 원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한자문화가 그랬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들의 일본어가 그 자리를 메뀄다. 미 군정하(軍政下)에는 영어가 대한민국의 일부 권력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어인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배배 꼬여진 법조문과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 관련 규정 및 계약서의 문구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이것으로 기득권들은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 (孤軍奮鬪)하고 있다.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는 청탁의 자리다. 승객 중에 버스기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원하는 것이 있는 승객은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더구나 그 자리는 룸미러를 통하여 서로의 얼굴이 빤히 보이는 자리라서 버스기사들이 그 자리에 앉는 승객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오르더니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십여분을 가다가 인기척을 느껴 룸미러를 쳐다보니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시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무뎌졌지만 내 무의식 중에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직 남아 있었는지 상당히 불쾌했다. 뭐, 내가 영화배우 현빈이면 모를까... 모르는 사람이 빤히 쳐다보는데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르신 무슨 말씀 하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기사님! 나 ㅇㅇㅇ에 내려야 되는데..." "네! 내려 드리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 빨리 말씀하세요!" "ㅇㅇㅇ가느거 거기서 갈아타야 되는데...ㅇㅇㅇ가는 차가 몇 시에 있어요? "저도 몰라요!. 버스 시간표를 봐야 돼요!." "기사가 버스 시간도 제대로 몰라!" "어르신! 기사는 버스시간표 다 외우고 다니란 법 어디 있어요? 내리시는 곳에 버스 시간표 붙어 있으니까, 그거 보면 되실 거 아니요! " 사실 정말로 몰랐다. 시골버스 시간이 5분마다 한 대씩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십 개의 노선에 시간마다 들리는 마을이 다르니, 마을마다 별도로 있는 수백 개의 버스 시간을 어떻게 다 외운단 말인가? 동료 기사들 중에는 버스 시간표를 대충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기사가 있어서 바로 답이 나오는 분도 계시기는 하다. 참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버스 전체 시간표를 갖고 있지만, 운행 중이니 펼쳐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골버스 노선 시간표는 경우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좀 복잡하다. 행선판은 읽으실 줄만 알면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이니 버스의 목적지를 알 수 있지만, 이놈의 시골 버스시간표는 노인들에게는 마치 고등학생들이 원소 주기율표 보는 것과 같이 복잡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사가 그냥 말해 주면 되지! 시간표를 보라고 난리야!" 그 할머니 참 뻔뻔하고 고집도 센 분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화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시겠지만 점점 감정이 실리면서 할머니와 말다툼이 되어 버렸다.) "할머니! 혹시 시간표 볼 줄 몰라요? "사실 내가 까막눈 이오!" 순간, 내가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했다고 깨달았다. " 어르신 미안합니다. 제 말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아니요! 기사양반 우리 옛날 노인네들은 딸이라고 학교도 안 보내주고 해서... 야학으로 '갸가거겨'를 깨치기는 했는데..." "ㅇㅇㅇ에 내리시면 승강장에 시간표가 있을 텐데, 눈매가 좀 선하게 생긴 사람에게 시간표 좀 봐 달라고 하시죠!" 작년 크리스마스에 큰딸에 가 용돈을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나에게 책을 선물했는데 관상에 관한 책이었다. 그 내용 중 심상(心相)은 곧 관상(觀相)이라는 구절이 생각나서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러다가 아예 한적한 길가에 버스를 잠깐 정차하였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시간표를 꺼내보고, 할머니에게 타고 가실 버스의 시간을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