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회사에는 여러 가지 경력을 소유한 동료기사님들이 근무하신다. 그중에 대도시에서 시내버스를 하셨거나, 시외버스를 운행하시던 분들도 계신다. 이분 들의 공통된 말씀 중 '괴산 버스는 회차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뭔 빠꾸(back)는... 버스는 후진을 안 하는 건데...'
괴산 시골버스 노선은 주된 경유지가 산골마을이다.
마을 구석구석 다니며, 노인정이나 마을회관 앞 등 공터에서 버스를 회차하여 다시 큰길로 나온다.
마을 공터의 크기가 버스를 한 번에 돌릴만한 크기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곳이 거지반이니 버스 회차를 위한 후진은 기본이 되었다. 더구나 공휴일이나 농번기가 되면 부모님을 찾아뵙는 도시 거주 자녀들의 주차장도 마을 공터나 마을회관 앞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골버스 한 번 해보겠다고 며칠 견습받다가 연락도 없이 사라진 견습기사가 한 둘이 아니다.
버스기사는 주어진 배차시간에 맞추어 운행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고무줄이다. 그 고무줄의 길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노인 승객들이 좌우한다.
먼저 깨 자루, 콩자루, 사료가게 사장님 손에 들린 개사료(참고로 이 짐들이 버스에서 내려갈 때는 오롯이 버스기사 몫이 된다.)등이 버스에 올라온다. 그리고 짚고 계시던 지팡이가 버스 안으로 던져지고, 뒤이어 본인 당신이 '영차, 영차' 기합소리와 함께 올라오신 후, 그제야 당신의 온몸을 뒤져 버스요금을 찾는다.
버스 요금을 돈통에 넣고 나면, 버스 안에 미리 타고 계시던 지인들과 그동안의 안부 교환 및 인사가 나누어진다. 여기에는 자식들의 안부 및 올해 농사 수확량 등이 일정한 레퍼토리로 보고 되며, 힘들어서 내년부터 다시는 농사 안 짓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는 버스 안의 좌석중 벨의 위치가 가깝고 외부의 경치가 가장 잘 보이며, 버스에서 내리기에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서 버스 안을 방랑 후 드디어 자리에 착석한다.
이 기나긴 여정을 기다리지 못하는 성질 급한 기사는 급기야 테너 파트 성악가의 성량으로 노인분들에게 아주 정중하게(?) 빨리 앉으시라는 육성 방송을 한다.
여기에 작용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는 버스기사의 단어 선택에 있는데, 친한 사람들 까리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선택해 민원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상황이 이럴진대, 버스 시간이 고무줄이 아닌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노인들의 시간은 물리학의 법칙에 오히려 더 충실해서 본인들의 주관에 기인한다.
버스를 타러 매일 나오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버스 승강장에 나온 날은 버스가 늦게 온 것이고, 집에서 일을 보다가 평소보다 승강장에 늦게 나온 날은 버스가 비행기처럼 날라서 온 것이다. 또 날씨에 따라서도 시간의 흐름이 달라, 많이 춥거나 더운 날은 10분을 기다렸어도 버스기사에게는 한 시간 기다렸다고 역정을 내신다.
버스기사 초년병 때는 일일이 논리적 설명을 곁들여 이해시켜 드리고자 노력했으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부 부질없는 일이란 걸 알아차렸다.
할머니 "오늘따라 왜 이리 버스가 늦게 와요?"
기사 " 어르신 혼자 사시죠?"
할머니 " 그걸 어떻게 알았데..."
할아버지 "오늘은 왜 이리도 버스가 빨리 왔누?"
기사 " 어르신 혼자 사시죠?"
할아버지 " 그런 걸 어떻게 알았데... 기사양반이 관상도 보나?"
기사 " 어르신! 요즘 아들. 딸들 집에 안 오죠? 전화도 안 하고..."
할아버지 ".... "
칼날이 달린 말은 듣는 이의 마음을 찌른다.
버스가 시간을 못 지킨 것이 아니라 말 상대가 그리운 거다.
기사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데, 화제가 하필 버스시간이다.
"오늘따라 기사양반 멋있어 보이네... 뭔 좋은 일이 계신가? " 이러시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오늘따라 우리 엄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