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전화

by 한지원

여러분들은 시골에 가시면 버스 안을 자세히 보신 적이 있는가?
몇 명이나 타고 있는지... 많아야 2~3명 혹은 버스기사 혼자 타고 다니거나...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10여 명의 승객을 태운 경우도 허다하다.
버스 한 대당 가격은 옵션에 따라 달라지지만 약 1억 원 정도, 아무리 시골버스지만 약 6,000cc~7,000cc의 배기량을 지닌 리어엔진 버스이다.
연비는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평균 3.5km/l 정도밖에 안 나오고, 하루에 보통 80~120 리터 정도의 디젤 연료를 사용한다. 그리고 버스기사 급여는?
이런 상황에 버스회사에 이익이 발생할 리가 있겠는가?.
항상 적자다. 국가나 지자체의 보조금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업가가 비즈니스로서 시골버스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업적인 가치를 상실한지는 벌써 오래전 이야기다.
그러하니 버스회사는 지자체 보조금의 원활한 수령에 회사의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버스회사의 사무실 직원에게는 군청의 교통을 담당하는 부서 공무원이나, 교통 관련 예산을 책정을 하는 군의원들이 천사로 보이기도, 저승사자로 보이기도 한다. 버스회사 관리자는 군청에 있는 교통담당 눈치만 보고, 군청 공무원은 예산 책정해주는 군 의원들 눈치만 본다. 군 의원들이야 물론, 유권자인 군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그 대다수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다.
이 눈치 싸움에 가장 민감한 주제는 역시 민원이다.
버스가 마을에 안 들어왔다던가 시간을 어기고 왔다던가, 버스기사가 불친절하다던가... 수없이 많은 민원전화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리고 말한다 "민원만 안 들어오게 해 주세요".
그 민원은 곧 보조금 지급의 지렛대로 사용되니 버스회사 관리자는 승객들의 민원에 민감할 수밖에...

그 민원중 일부는 노인들에 의하여 발생되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군의원 등을 통하여 직접 전달된다.
시골버스 운행 횟수와 노인들의 우울증 지수와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보고된 논문이 있다고 한다.
운행 횟수가 늘어나면 노인들의 우울증 지수가 낮아지고, 버스 운행 횟수가 줄어들면 우울증이 걸리는 노인들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데 혼자서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버스는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와도 같다. 그러나 가끔 이 통로가 당신들의 애를 태운다. 뒷 마을, 옆 마을에 사는 김 할머니가 이 할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손꼽아 기다린 시골 오일장날에,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서 만나야 되는데..., 야속한 버스는 제 때 안 오고...
노인들에게 이보다 더 큰 민원이 있겠는가?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민원은 전화로 이루어지는데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다.
특히, 앞서서 말했던 것처럼 시골 버스 승객들 중 2% 부족한 사람들의 민원전화가 많다는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대부분 이 사람들은 버스를 이용, 복지센터 등으로 출근하여 하루를 소일하는데, 평상시 상대하는 사람들의 무시와 하대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며 예의를 갖추어 대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군청 교통관계 공무원들과 버스회사 사무실 직원들이다.
이 민원인들은 전화로 그동안 쌓였던 차별대우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쏟아붓고, 그 반대급부로 예의 바른 전화응대를 통한 사과로 보상받는다.
이 대목에서 깨닫는 느낌이지만, 이 통화는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를 필요가 없음이 그 한계다. 이 민원전화는 그들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해방구 인지 모른다. 이것 또한 일종의 중독성이 있어 민원전화의 다중 경험자가 많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승객을 버스에 그냥 오르게 나둔다면 그것은 버스기사의 직무유기이다.
하루는 이십 대 초반의 한 아가씨가 마스크를 턱에 걸고 버스에 승차하기에 올바른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면서 불응 시에는 승차거부를 하겠다고 경고하였다.
몇 분 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오기를 "마스크를 했는데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는 민원전화를 방금 받았다고 했다.
바르지 않은 마스크 착용으로 지적당했던 그 아가씨가 내 말을 듣자마자 버스 안에서 회사 사무실로 민원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지금 사무실에 전화했어요? "(아가씨 대답 없음.)
"(나는 손가락으로 차 안의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마스크 착용 제대로 안 한 것 모두 녹화됐고, 비디오 갖고 경찰서에 가서 무고죄로 신고하겠으니, 이름하고 휴대폰 번호 주세요! "
속이 부글부글 했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했다. 승객은 내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한번 더 말했다.
"아가씨! 무식해서 무고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
하여간 경찰에다 신고할 거야"
경찰. 신고 두 단어는 확실하게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 불쌍한 젊은 아가씨의 낯 빛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니...

구약성경에서 형 카인은 질투심으로 동생 아벨을 죽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다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
카인은 대답 대신 하느님께 짜증 섞인 질문을 내뱉었다.
"내가 동생을 보살피는 사람입니까? 왜 동생의 일을 나에게 묻습니까?"

'신이 우리 인류에게 원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위 질문에 가장 좋은 모범 답안은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한 연설문에 있다.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배철현)

다음은 그 연설문 중의 한 대목이다.
-중략-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지만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입니다. -중략

나의 내면에서 깊은 울림이 울려 나왔다.
"가엾은 버스 기사여! 네 승객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내 속의 부글거림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 왜 그걸 나에게 묻습니까? "
"내가 승객 보살피는 사람입니까? "


아들아!... 아빠가... 널 보기가 창피하구나!...
나는 진화가 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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