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의 본능

by 한지원

지구 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에 자웅동체인 무척추동물 등 몇몇 하등 한 동물을 제외하고는 암수 구별이 뚜렷한 자웅 이체가 보편적이다.
그중 수컷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또는 획득한 영역을 지키고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 영역싸움의 승자는 건강한 암컷과 풍부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넓은 영토 등을 획득하고, 싸움에서 패한 수컷은 귀중한 생명을 잃거나, 혹은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한 채 싸움에서 얻은 깊은 상처로 평생 불구의 몸이 되어 고단하게 나머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런데 수컷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험난하고 어려운 영역싸움을 하는 것인가?
결국은 자신의 DNA를 후세에 남기되, 좋은 환경을 확보하여 자손들의 생존율을 높이고자 목숨을 걸고 영역싸움을 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인류도 그 범주에 벗어나지 않는 바, 인류의 수컷 즉, 남자들은 공간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권력, 재산, 지식 등의 분야마저도 영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한다. 역사책에 기술된 침략전쟁의 과정 및 결과를 보면, 본인도 피를 흘리지만 승전 전리품으로 패전국의 부(富)와 사람(노동력, 여성), 영토에 이르는 모든 것을 차지했다. 그러하니 어떤 영역에 주인이 없다고 판단되면, 피를 흘리지 않고도 이권을 차지할 기회라는 착각에 이성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사에게 있어서 버스 안은 한정적이고 폐쇄된 공간이다. 버스가 서울에 있건, 부산에 있건 서울에 있던 버스가 이동하여 부산에 도착하던 그 공간은 같은 공간이며 기사의 영역이다. 생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업무의 현장이다. 그러나 승객들에게 있어서 버스 안은 새로운 영역이다.
비록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시골 버스이지만, 버스 승객들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설렘으로 평상시보다 과장된 행동을 보인다. 평소보다 큰 목소리, 큰 제스처, 주변 이성(異性)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
내 관찰에 의하면, 남. 녀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여성은 `설렘 `만이, 남성은 설레는 여성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어설픈 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나는 남성들의 `과한 설렘`을 `새로운 영역에 대한 수컷들의 소유 욕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물 다큐멘터리등을 보면 짐승들이 먹이를 획득하면, 자신의 근거지로 먹이를 옮겨가서 먹는 장면이 나온다. 먹이를 먹는 장소는 자신의 가장 안전한 영역이라는 본능이 작용했을 것이다.
버스 승객들도 버스를 기다릴 동안 터미널 안에서는 과자나 음료수를 절대로 개봉하지 않는다. 버스 안에 들어와 의자에 착석 후 과자나 음료수를 취식하는 것을 보면, 버스 안을 안전한 자신의 영역으로 간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둘 이요!"
"두 명 이요!"
"두 명 찍어주세요!"
복수의 버스요금을 지불 시에는 버스기사가 단말기의 버튼 조작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러하니 승객 입장에서 복수의 요금을 지불할 시에는 아무리 말을 안 하고 싶더라도 몇 명인지를 기사에게 꼭 밝혀야만 한다.
위와 같이 공손한 말투는 동행한 사람이 친한 친구이거나, 가족일 확률이 높다.

"둘!"
"어! 둘!"
"둘 찍어!"
버스기사를 무시하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기사 속마음 '나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이렇게 버스가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외치는 승객은 거의 할아버지들이다. 그 뒤를 쫓아서 버스에 오르거나, 내리는 사람은 단정한 옷차림의 이쁘장한 할머니 이거나, 또는 상대적으로 젊은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까지 버스 요금을 하차 시에 지불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냥 할머니 "오랜만이야! 어디 갔다가 와?"
이쁜 할머니 " 침 맞으러... 영감이 없어져서 버스 타고
갔다 오느라고..."
그냥 할머니 "영감이 왜?"
이쁜 할머니 "돌아가셨잖아! 벌써 오래됐어!..."
이때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가 승강장에 정차하기도 전에 걸어 나오셨다.
(가끔 이런 경우 넘어져서 많이 다치시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버스기사를 무시하는 반말은 참을 수 있겠으나 안전사고를 막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 참을 수가 없다.)
"어! 세명 찍어!"
"어르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버스요금 이렇게 내시는 거 하나도 안 반가워요! "
버스가 정차도 안 했는데... 넘어져서 다치시면 기사에게 치료비 내놓으라고 할 거 아닙니까? 또 이렇게 하시면 어르신 승차 거부할 겁니다."
그래도 지각이 있는 분이었는지, 아니면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한 마디 대꾸도 안 하시고 조용히 내리셨다. 물론 뒤에 따르던
그냥 할머니와 이쁜 할머니 두 분 모두 쑥스러우셨는지 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아무 말 없이 따라서 내리셨다.

작년 늦가을쯤으로 기억된다.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초저녁이었다. 방지턱이 유난히 많은 구간을 통과하고 있었고, 온 신경을 도로 상태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룸 미러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승객 한 사람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버스가 운행 중에는 자리에 앉아 계셔야 합니다!"
"네! 미안합니다."
그리고 승객이 자리에 앉을 동안 버스를 잠시 정차하였다.

" 이 동네 버스기사 새끼들은 완전 독재야! 버스 안에서 쫌 걸어 다닌 거 가지고... 별 걸 다 가지고 버스를 세우고 지랄이야!
이거 직무유기야! "
룸 미러로 보니 내 또래의 웬 미친놈이 마스크는 턱에다 걸치고 침을 튀기면서 뭔지 모를 욕을 나에게 해대고 있었다.
나는 분명 여자분에게 얘기했는데... 욕지거리는 웬 미친놈이...
"아저씨! 마스크나 제대로 하세요!"
"도시도 아닌데 산골 촌 동네에서 마스크 안 했다고 지랄들이야!"
"아저씨! 마스크 제대로 안 하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신고해! 새끼야!"
아니 이놈은 걸레를 입에 물고 태어났는지, 말끝마다 욕이 붙어 나왔다. 이놈이 아마도 버스에 있는 여자 승객에 관심이 있었는지 연신 그쪽을 쳐다보면서 나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여자 승객 "왜? 아저씨가 소리치고 그러세요! 별 이상한 사람이야!"
나는 두 명이 같은 곳에서 버스에 승차를 해서 둘이 아는 사이 이려니 짐작했었다. 여자 승객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고, 내가 보기에 콧 방귀도 안 뀌는 것 같다.
(사실 이놈의 발언 중 지면에 옮기기에 부적절한 비방용 단어는 순화하거나 삭제하였습니다.)

112로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네! 112 콜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버스 기사입니다. 마스크 착용을 지적했더니 폭언을 하며 불응하는 승객이 있어 신고하려 합니다."
"빠른 출동을 위하여 신고자의 위치추적을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그렇게 하십시오!"
대한민국 경찰의 범죄신고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운영하는 주체가 소소한 문제가 있지만...)
잠시 후 5분 정도 지났을까..
순찰차가 내가 정차해 있는 버스 뒤에 경광등을 켜고 나타났다.
버스 밖에 나와 있던 나에게 경찰관이 물었다.
"버스 기사님이십니까?"
"네! 그 욕하는 사람은 버스 안에 있습니다."

그놈은 경찰관이 등장했음에도 욕설이 잦아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감염병 예방법을 위반하셨습니다. 그리고 버스기사에 대한 폭언 및 폭행은 중대범죄로 가중 처벌됩니다. 신분증 제시해 주십시오!"
"없어! 너네들 마음대로 해!"
"신분 확인이 안 되면 지구대로 저희들과 동행하여 신분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출동한 두 명의 경찰관중 젊은 경관이 본인의 얼굴에 튀는 그놈의 침을 손으로 닦아내면서 정중하게 요청하였다.
그놈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마스크를 내린 채 경찰관에게도 계속 욕설을 해대고 있었다.

젊은 경찰관 "기사님! 이 분 언어폭력으로 처벌받기를 원하십니까?"
기사 "네!"
같이 출동한 나이 든 경찰관에게(젊은 경찰관의 상관으로 보임)
젊은 경찰관 "연행할까요?"
나이 든 경찰관 "그러지 뭐!"
"선생님! 감염병 예방법 위반 및 언어폭력행위로 연행하겠습니다."
한 손을 허리춤으로 옮기는데 은색 수갑을 만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 그놈의 안색이 변했다.
'사건이 이렇게 까지 커지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닌데...'
" 경관님! 그냥 경고 차원에서 강하게 말씀해주시고 훈방 조치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놈에게 "기사님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면 훈방 조치하겠습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여기 계신 버스기사님에게 한 마디라도 욕설을 하시면 바로 연행하겠습니다."
나에게 "기사님! 저희가 확실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저희 관할지역까지 버스 뒤에서 경광등을 켜고 동행하겠으니, 여기 이 분이 뭐라고든 한 말씀이라도 하시면 즉시 버스를 세우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놈은 그렇게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자기 목적지까지 조용히 갔다.

괴산의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남성들에게...
버스 안의 영역은 버스기사의 것이다. 매번 누누이 강조 하지만 버스 안은 버스기사의 관리하에 안전하게 운영될 것이다.
당신들의 구애 장소가 아니라, 버스기사의 업무현장이다.
버스기사를 당신들 구애활동의 경쟁자로 여기지도 말거니와, 보조출연으로 써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어르신!" 그렇게 할머니들 앞에서 호기 부리시다가 다치시면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 침대 신세 지셔야 해요!, 그리고 요즘 할머니들도 금전 관념이 확실해서 버스요금 천사백 원에 안 넘어오세요... 혹시, 천사백만 원짜리 다이아반지면 모를까?
할머니에게 환심 사서 뭘 어쩌시려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장이 오래돼서 가동이 안돼요! 어르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르신 DNA를 퍼트릴 수가 없어요!

상대적으로 젊은 그놈에게...
야! 버스에서 거시기한 로맨스는 우연을 가장한 뮤직 비디오밖에 없어... 그거 다 픽션이야! 너도 여자 앞에서 괜히 호기 부리다가 수갑 찰 뻔했잖아...
자중하면서 조용히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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