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by 한지원

이 세상의 만물은 공간 이동시 최단경로를 찾아 목적지로 이동한다.
산 위에 내린 빗물은 가장 짧은 경로를 찾아 바다(가장 낮은 곳)로 가고, 어둠을 관통하는 빛은 항상 직진한다. 직진하는 것이 최단 거리이니까!.
비행기나 배의 항로도 직선이다. 지구가 구형이고 지구의 표면을 따라서 움직이므로 실제 경로는 원호를 그리지만 지도상에는 직선으로 표시된다. 이 이야기가 이해가 안 되시는 분은 지구본을 펜으로 그어 보면 이해할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어찌 됐건 이 모든 현상은 에너지 효율 하고 연관이 있다.
공간을 이동하는 것만이 목적이고 결과라면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마 생명이 있는 생명체들도 같은 이치로 움직이리라...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갖고 있던 에너지의 30%만 사용해도 될 것을 돌아오느라 50%의 에너지를 썼다면 좀 억울하지 않은가!.. 오는 도중 너무 멋진 오솔길이 있어 시(詩)라도
한 수 지을만한 경험을 얻어 오면 모를까... 그리고 나는 그 詩가 낭비된 에너지 20%를 상쇄하고도 남으리라 확신한다.

인간은 자신이 매일 다니던 길을 벗어남으로 영감을 얻는다.
(여기에는 여행도 포함된다.)
새로운 길을 걸어갈 때 인간의 뇌는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인지능력을 발휘하여 주변의 사물과 시식 각각 변하는 상황은 관찰하고, 이것을 토대로 이 뇌의 주인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시키고자 노력한다. 육체가 멀쩡해야 거기에 달려있는 머리와 나를 지배하는 뇌도 무사할 것 아닌가?
여기서 인간은 즐거움이라는 잉여 수확물을 얻게 된다.
익숙함 이란 매일의 반복된 일상으로 얻어지는 부산물일 뿐이다. 익숙함은 실수를 줄여줄 수는 있어도 창조적이거나, 삶의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시골버스 노선은 절대로 직선 코스로 가도록 만들지 않는다. 가능한 한 빙글빙글 돌아서 산골 마을 많은 곳을 거쳐서 갈 수 있도록 노선을 설계한다.
그것이 시골버스가 존재하는 이유이니까!...
시골버스는 원점 회귀 노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권이 군청 소재지나, 읍내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다.
본거지인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마을을 구석구석 쑤시고 다니다가 괴산 바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터미널로 돌아온다.
버스 노선이 갈 때, 올 때 들르는 마을에 사시는 노인들에게는 이런 버스노선은 아주 좋은 관광노선이다.
나이가 들어 농사일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된 이제야 내가 사는 곳의 주변이라도 구경하고자 하나, 구경은커녕 내 동네 둘러보기도 버거울 만큼 육체는 쇠퇴해져 본인 신세만 한탄하니, 그 우울한 감정은 우울증을 불러들인다.
그런 우울증의 원인이 외로움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시골버스가 특효약이다.

여러분은 기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승객이 누군지 아시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시골버스 타고 관광하는 노인들이다.
버스 운행 중에 햇빛 피한다고 자리 옮겨 다니시기, 옆동네 지인 승차 시 버스요금 대신 내준다고 걸어 나오시기 등 거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싣고 다니는 느낌이 든다.
동네를 지나는 마을 어귀에서 출구에 이르는 모든 길에 수십 개씩 만들어 놓은 과속 방지턱은 말이 과속 방지턱이지 거의 산맥 수준으로, 통통거리는 시골버스와 만나서 버스 안의 승객들을 길길이 날뛰게 한다.
노인들은 버스가 움직이는 도중 자리를 옮기다가 다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골다공증이 심한 노인들이 대다수 이어서 넘어지시거나, 버스 내 시설물에 부딪치면 골절상을 동반한다.
그래서 버스기사는 전방을 주시하기보다는 룸미러로 버스 안을 살피기 바쁘다
또한, 이 어르신들은 천동설(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의 신봉자 이어서 절대로 주변 상황에 당신을 맞추지 않는다. 내가 움직일 때는 기사가 항상 나를 주시하기 때문에 결코 버스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다른 망구들은 서 있으면 안 되는지만 나는 항상 괜찮아서 절대로 안 넘어진다고 믿는다.
시간도 풍족한 시간 부자들이다. '이왕이면 나를 태운 버스는 노선으로 가지 말고 경치 좋은 곳으로 한 바퀴 더 돌고 가지!' 이렇게 바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목적지에 도착해도 할 일이 딱히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로 안 그럴 거라고 항변하지만, 아직 노인이 되어보질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 동네 어귀에 들어섰는데,
길 건너 맞은편 승강장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태워드리고 싶었으나, 버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게 하기에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버스를 세우고 길을 건너오실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드렸다.

할머니 승차 후 일성. "아이고! 오늘따라 차가 일찍 왔네!"
" 어디 가시게요?"
" 차가 일찍 왔길래...! "
"어르신 자리 옮겨 다니시면 안 돼요! "
"알았어! 차가 일찍 와서..."

다음 마을
" 벌써 타고 있네! 시내 가려고?"
" 응! 차가 일찍 와서...!"
" 오랫 만이야! 여기서 보네! "
" 그러게! 차가 일찍 와서...! "

기사 속마음 ' (배차시간표를 슬쩍 보면서) 혹시, 내가 정말 일찍 왔나...?'

keyword
이전 14화새벽 첫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