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Harvard)

by 한지원

터미널 구내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보통 이런 전화는 받아보면...

거의 나에게는 영양가 없이, 시간을 축내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화로 영업하는 사람이 이 전화통화를 하려고 망설였던 맘을 헤아려, 내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받아본다.

더욱이 귀농 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전화벨이 귀농후 뜸해져서 '나도 잊힌 사람이 되는가 '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나에게 전화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한지원 기사님 되십니까? LA Times ㅇㅇㅇㅇ기자입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신가요?"

'아니, 외국 신문기자가 나에게 무슨 용건이지?'

식사 중이라 잠시 후에 전화드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땡~!

메시지가 들어와 확인하니, 기자 명함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전화를 걸었다.

한국사람이다.

'어쩐지... 뭐라 얘기하는지 다 알아듣겠더라...'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 대학을 나와

LA 타임스 본사에서 일을 하다가 얼마 전 서울 지국장으로 발령이 나 현재는 서울에 있다고 했다.

'사회가 점진적으로 도시화되면서, 진행되는 지방도시의 인구감소를 주제로 심층기사를 쓰려고 한다'고 했다.

'그중 충북 괴산이 인구감소로 없어질 지방 소도시 순위 5위권에 들었다는 통계를 보았는데, 시골버스기사가 브런치에 노인들 이야기를 쓴 것을 보고 버스기사를 취재하면, 현실적인 기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며칠 후 첫차 운행을 시작하려고 목도, 음성 방향 터미널 홈에 버스를 대고 있었다.

"한 기사님 되십니까? "

전화목소리로 여기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작은 체구의 여기자 였다.

서글서글한 눈매(마스크를 써서 눈만 보임)에 검은 배낭 하나를 들쳐 메고, 한 손에 에코백을 다른 손은 조그마한 카메라를 들었다. 보통 기자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는 영화감독의 메가폰 같은 것이 앞에 달려 있었지만, 이 양반의 것은 기자의 카메라 치고는 작아서 앙증맞게 보였다.

"네! 어서 오세요! 운행시간 되었으니, 가면서 말씀 나누시죠!"

"기사님! 사진 찍어도 될까요! "

"네! 그렇게 하세요! 얼굴 보고 떼 먹힌 돈 받으러 올 사람 없으니..."

분위기 전환용으로 아재 개그를 한 토막 했다.


" 그 신문은 교포들이 많이 봅니까?"

"영자신문(英字新聞)이고요, 교포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이 봅니다."

"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대한민국 괴산 얘기가 관심이 있겠습니까?"

"그럼요! 의외로 그런 일에 재미있어해요!"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이 이뻤다.

"말이 지국장이지 서울에 저 혼자입니다. 그래서 카메라 기자가 오지 못했고요! 제가 버스에 타시는 분들 인터뷰해도 되나요!"

"그렇게 하십시오!"


한국 나이로 치면 사십 대에 들어섰고, 미국 나이로 치면 삼십 대 후반의 여성 기자다.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노인들의 에피소드나, 승객들의 구성, 시골버스의 노선 등에 관하여 시골버스기사에게 물어보았고, 노인들이 승차하면 예전과

현재의 마을 인구 변동상황 등을 취재했다.

귀가 안 들리는 노인들과 말귀를 못 알아들어 동문서답을 하는 노인들로 취재가 원활하지는 않았다.

"기자님! 원하시는 대답을 듣고 싶으시면 적당한 인내심을 가지셔야 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도무지 대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노인들에게도 표정 구김 없이 친절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참으로 성실하게 인터뷰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노인들의 이름을 묻는데, 한결 같이 잘 말씀을 안 하신다.

"그냥 대충 쓰시면 안 되나요?

"할머니는 뭐! '김말년, "

"할아버지는 김금동... 이렇게!"

"기자는 사실만 써야 된다고 배웠습니다.! "

얼굴이 화끈거렸다.

공손한 말투, 바른 인사성,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 젊은 기자가 썩 괜찮아 보였다.

점심을 올갱이 해장국으로 먹었는데,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어요!"

손님 대접 차원에서 음식값을 지불하려 했으나, 회사의 취재경비로 써야 한다고 해서, 결국 괴산 촌놈이 LA 타임스 법인카드로 산 올갱이국을 얻어먹었다.

"LA면 미서부지역인데... 대학도 그쪽에서 나왔습니까?"

"아니에요! 학교는 동부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동부 어디요?"

"Harvard!"


입만 나불거리는 하버드 졸업생 정치인이나,

전 법무장관의 삽화를 성매매 기사에 그려 넣은 기자들을 보면서...


미국이 트럼프 같은 미친놈을 대통령으로 앉혀놓아도 굴러가는 건, 제대로 된 기자와 언론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코 올갱이국을 얻어먹어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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