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 발생(個體發生)은 계통발생(系統發生)을 반복(返復)한다.'
"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하는 매력적인 문장인가?"
이 문장에 의하면, 수백만년의 진화과정을 단 몇 개월만에도 엿볼 수 있다.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헥켈(Ernst Haeckel)의 '발생반복설'이론이다.
'한 개체가 발생하는 전 과정을 추적을 해보면 그 개체가 속해있는 종(種)이 진화(進化)해온 과정을 알 수가 있다'라는 말이다.
몇몇 창조론자들은 이 '반복설'을 사기(詐欺) 이론이라 치부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학계의 비판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이론을 증명함에, 여러 개체들의 수정(受精)에서 발생(發生)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추적 관찰한 결과와 지금까지 발견된 진화의 고고학적 증거들을 비교해 보는 귀납적(歸納的) 방법과, 진화의 증거를 기반으로 개체들의 발생과정을 추적해보는 연역적(演繹的) 방법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학제(學製)하에서 배웠던 교과 중 가장 인상 깊고 의미에 있는 한 문장을 고르라면, 나는 서슴없이 위 문장을 선택 할 것이다.
만일, 내가 평생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위의 문장과 연관이 있는 학문을 하였을 것이다.
'반복설'은 나에게 귀납적 사고와 연역적 사고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준 이론이다.
물론, '반복설'이 내가 평생을 먹고, 살고, 생활하는데, 그다지 큰 도움은 주지 못했지만, 생각하며 살아감에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을 위하여 다시 부연하자면,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 즉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서 수정체가 되고, 세포 분열을 시작하여 2구체, 4구체, 상실기, 포배기, 낭배기를 거쳐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까지의 발생과정이 나의 발생과정과 동일하다는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영장류로 가지가 갈라지면서 한 사람 개인으로 최종적으로 태어났다.
이것이 반복설의 기본 핵심 내용이며, 진화론의 증거 라고 이야기 한다.
인간이 하등한 동물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서 발생한다고 했으니, 창조론 자들이 이 이론을 싫어할 수밖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오래된 화석 같은 논쟁이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본성(本性)은 선(善)하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는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 맞서고 있고.
서양의 성경에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나열한다.
선하신 하느님을 닮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성선설'과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태어났다는 관점으로 본 '성악설'이 맞서고 있다.
나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보고자 한다.
인간이 하등한 단세포 생물에서 영겁(永劫)의 시간을 거쳐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했다고 한다면, 인간이란 종이 진화로 거쳐왔던 모든 과정을 개체가 발생하는 동안 반복해서 겪었다.
결국 인간의 뇌 속에는 단세포 생명체에서 파충류나
영장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배우거나 경험한 적 없는 일을, 생존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보면 인간도 동물의 한 종류로 보는 것도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결국, 인간의 몸속에는 지금까지 진화로 거쳐왔던 모든 역사가 DNA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 속에는 단순한 생존본능과 고도의 지성이 동시에 공존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이루고 살다 보면 사람 관계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가족을 꾸리기에도 두 명의 이성이 모여 서로의 이해와 사랑으로 짝을 이루고 가정을 만든다. 무인도에가서 살지 않는 이상, 직장생활을 하던 농사를 짓던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러기에 인간은 모여서 살도록 운명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사회 안에는 오롯이 생물학적인 본능으로만 짐승 같은 삶을 살거나, 이성(理性)으로 생리적 본성을 누르며 성자(聖者)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나, 문명세계와 원시세계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와 시골의 문제도 아니고, 학식의 높고 낮음도 아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 중 진정한 사람의 뇌를 가진 자들과 진화가 덜된 동물의 뇌를 가진 자들의 문제이다.
여러분들은 파충류급의 하등한 동물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나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갖고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는가? 혹시, 악어나 뱀이 다른 동물을 불쌍히 여겨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신적이 있는가?
오죽하면 위선자(僞善者)를 빗대어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간에게도 악어나 뱀 같은 파충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류들이 버젓이 존재한다.
본인의 본능적인 쾌락만을 쫓는 인간들...
돈, 권력, 섹스...
자신의 돈을 위하여 사람의 인권을 빼앗고, 권력유지를 위하여 사람을 죽이고, 말초적인 쾌감을 위하여 성폭력을 자행하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돌보기커녕, 괴롭히고, 빼앗고, 죽이고...
동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호랑이나 사자가 '백수의 왕'이라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영양이나 사슴을 고문하여 죽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사자나 호랑이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은 먹이 활동을 위한 생존 본능일 뿐이다.
나는 지금껏 거북이나 뱀이 알을 낳고 품어서 새끼를 키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와는 행동양식이 전혀 다르다. 뇌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뇌가 거기까지 밖에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몰하는 세월호의 선창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구조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의 얼굴과 몸짓을 잊지 못한다.
그 장면을 뉴스 생중계로 본 순간부터 내 뇌리에는 망자의 비석에 새기는 비문처럼 고통이 각인되어 버렸다.
이제는 세월호 타령 그만하자는 꼴통들도 파충류급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사람이 어떻게 그 장면이 잊혀 지겠는가?
어찌 파충류 따위들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요즘, 대한민국의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뽑기 위한 여야 정치권의 경선 경쟁이 치열하다.
새파랗게 젊은 정치인이나, 늙어서 허리가 구부러진 정치인도 대통령 한번 하겠다 그 기염들을 토하고 있다.
화려한 언변과 이미지로 본인의 본성을 가리고 국민들의 호도하기 바쁘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정치인이 사람에 가까운지, 파충류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에 뱀과 악어가 판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