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는 매월 1일 되면 새로운 노선으로 한 달을 시작한다.
그날도 새 달이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일 년 만에 다시 오는 노선이니, 길도 새롭게 보이고 승객들의 구성 및 내용에도 변화가 있다.
어르신 숫자가 줄거나, 학생이 늘어나는 경우가 있어 인원수에 변동이 생기기도 하고, 작년에 중학생이었던 친구가 고등학생으로 신분상승이 되어, 승차하는 지점과 사람은 동일하나 내리는 곳이 바뀌기도 한다.
달이 바뀐 첫날 아침,
거의 승차하는 사람이 없던 마을의 승강장에서 빨간색으로 도배를 한 듯한 느낌의 아줌마 한 사람이 버스에 올라탔다.
읍내 터미널까지 도착하여 그 승객을 무사히 하차시키고, 다시 저녁이 되어 막차 운행을 준비하느라 터미널 홈에 버스를 정차시켰다.
"안녕하세요?"
친절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어 얼굴을 보니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래위 모두 빨간 색깔의 입성을 보니, 아침에 그 한적한 마을의 승강장에서 탔던 아줌마였다
"네! 안녕하세요!"
상호 호혜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나도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이렇게 기사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는 경우, 십중팔구는 기사에게 뭔가 청탁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은 의식(意識, consciousness)을 넘어 감각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괴산의 가을밤은 무지하게 쓸쓸하다.
시골길 가로수 잎들은 낙엽이 되어 아스팔트에 뒹굴고, 짧아진 해는 주변을 어둠으로 감싸고 있어, 바람이라도 좀 부는 밤이면 옛날 유명하던 사극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 밤길을 혼자서 걸을 때면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시골버스의 노선은 큰 줄기의 본선이 있고, 가지처럼 중간중간에 외딴 마을을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하니 갈 때 들렀던 마을의 순서가 올 때는 반대로 되기도 하고, 승객이 거의 없는 마을은 정차 순위에서 끄트머리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기사 마음대로가 아니고 노선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괴산에서 불정면의 "목도"를 가는 길에 "주월리"와 "율리" 란 마을을 거친다.
지도상으로 위치를 따지면, '율리'가 먼저이고 '주월리'가 나중 이건만, 정차의 순서는 "주월리"를 먼저 가고 그다음 "율리"를 들른다.
"기사 아저씨! "
"네! 말씀하십시오!"
" '율리' 먼저 가시면 안 되나요? "
항상 시골 버스기사의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바로 그 친절한 인사의 주인공이다.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이었지만, 혹시 나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분노의 흥분을 누르고...
" 왜? 거기를 먼저 가야 되는 사정이 있으십니까? " 주변이 너무 깜깜해서 집에 빨리 가고 싶어요 "
이런 대답을 들을 때면, 신께서 나로 하여금 고난 속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Yuji 할 수 있는 인간인지 확인하시고자,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여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혹시 버스 기사들 중 여자의 말대로 운행을 한 기사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
"전에 '주월리'보다 '율리'먼저 들어간 기사 놈이 있었습니까? "
"어떤 몰상식한 기사 놈이 노선을 자기 맘대로 바꿔요! 그놈이 누구요? 말씀하세요! "
형사가 범죄자를 취조하듯이, 애꿎은 동료기사를 빗대어 그 여자를 쥐 잡듯 몰아붙였다.
"아주머니 규칙은 지키라고 만든 겁니다. 괜히 선량한 버스기사가 규칙 위반하게 만들지 마시고, 다시는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말씀은 하지도 마세요! "
나는 이성을 되찾고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아이고 죄송해요! "
'암!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물론, 마음속으로...
그리고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 버스에는 주월리에 내리는 학생이 한 명 타고 있었고, 자신만의 편리함과 이익만을 쫓는 어른들의 행동이 학생의 눈에 어떻게 비추일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요즘 뉴스를 접하다가 문득 들은 생각인데...
뉴스를 19禁으로 분류하여 청소년은 못 보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정치가와 그를 미화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쓰레기 같은 기자들, 그리고 머리는 대뇌피질 대신에 우동사리가 들어있는 추종자들...
도대체 얘들이 뭘 배우겠냐?
뻔뻔스럽게도 자신만의 편리함과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것은 버스 승객이나 정치인이나 다를 바 없지만, 나의 버스 승객은 사과를 했고, 그놈은 끝까지 사과를 안 한다.
사실 두 사건을 연결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뻔뻔하게 그냥 한 번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