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는 시공간을 여행하는 존재들이다.
본인이 미래의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누구가 언제, 어디서 버스를 타게 될지 아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매일 다니는 노선이니까!...
물론, 자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제3자가 만들어 놓은 시공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지만...
특히 시골버스기사는 더욱더 그러하다.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매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산골마을의 승객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어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정자나무 밑 승강장에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내가 탈 버스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를 경유해서 누구를 태워서 우리 마을까지 왔는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공간의 단면만 을 본다.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정보. 즉 "이놈의 버스가 몇 시까지 저 승강장에 나타나야 되는데..." 그것을 어길 시(버스시간이 늦어지는 가장 큰 요인이 노인들 자신이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면서...) 기사양반이 아니고 기사 새끼가 된다. 한 동료기사는 이렇게 나이 먹은 새끼를 봤냐고 노인들과 입씨름도 했다고 했다.
오래된 시골버스기사는 어느 동네에서 누가 타서 어디에 내리는지, 심지어 무슨 일 때문인지도 승객들의 일거수를 꿰고 있기도 하다.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승객은 우리의 이웃이고 같은 마을 아줌마, 아저씨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서로의 안부를 여쭤 볼 수도 있고, 농사방법에 토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일부 승객일 뿐, 불편한 현실은 승객이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정보도 기사가 파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버스기사는 본인이 싫더라도 남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주입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승객 자신은 버스기사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것은 역으로 승객들의 관찰로 기사들의 사생활도 자연스럽게 공개된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한 정보교류는 상호 간 통제가 가능하지만 관찰에서 얻어지는 정보(과학적 관점에서는 '관찰'이지만, 정치적 관점에서는 '사찰'이 되기도 한다)는 현실에서 왜곡된 허상을 낳기도 한다.
하루는 연세가 팔순이 지난 듯한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운전하는 바로 뒷 좌석에 앉으시더니 그윽한 목소리로
"부흥에 집을 두채 갖고 있는 과부가 하나 있는데... 얼마 전에 이혼했어... 남편은 일본 사람이었는데... 나이도 기사양반 하고 비슷할 걸..."
처음에는 농담하시는 것으로 착각하여...
내가 묻길 " 어르신 그 과부가 혹시 명(命)은 짧아 보이던가요? "
할머니 답하길 "그냥 보기에는 튼튼해서 오래 살 거 같은데... 속은 모르지.." (후배가 말하기를...시골에서는 40kg짜리 콩자루 번쩍번쩍 드는 여자가 최고의 신붓감 이라고 한다. 아마 할머니도 그것을 염두에 두신 듯...)
어라! 이 할머니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닌 모양이네...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설마 나를 중매하시려고...
남이 보기에 홀아비로 보일 정도로 내가 추레했나...
아니면, 이번 기회에 지금 마눌님과 헤어지고 새 장가를 가야 하나!... 별... 희한한 일도...'
잠깐 승강장에 버스가 정차하는 틈을 타서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내의 가장 예쁘게 잘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을 했다.
"어르신 이 사진 잘 보셔요! 특히 두 눈을 잘 보셔요!
두 눈이 시퍼렇죠? 어르신 보기에 누구 같으셔요?
"아이고! 이쁘게 생겼네... 기사양반 마누라여?..."
H.G 웰스의 타임머신은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여행하며, 과거와 미래도 자유롭게 여행한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시공간을 여행하지만 시간은 관찰자와 똑같이 흘러간다. 별 영양가가 없다.
즉, 시간여행은 하지만 늙어가면서 하는 여행이다.
그것도 미래로만... 어찌하랴! 현대 물리학은 과거로의 여행을 허락지 않았다.
어찌 됐건 버스기사는 타임머신이 아닌 버스를 타고 미래로 시간여행을 한다. 그러나 그 버스는 가끔 과거로 돌아가기도 한다. 현대 물리학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괘씸한 행위지만...
깜빡 딴 생각에 외딴 마을을 지나쳐 왔는데...
평상시에는 거의 승객이 없는 마을이었지만, 항상 이럴 때는 머피의 법칙이 작동하여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기사님! 혹시 ○○마을 안 들어 가셨어요?"
기사 왈 " 어...그러니까...어..."
사무실 왈 "버스 돌려가셔서 다시 태우고 오세요!"
"네! 알았습니다."
시골버스기사는 두말 않고 버스를 돌려서 기다리는 승객을 모시러 다시 과거로 여행을 하러 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우연과 교차한다. 그 우연이 젊은 시절 연애하듯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진정한 우연일 수도 있다. 이 진정한 우연은 아드레날닌의 분비를 촉진시키며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소심한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대범한 사람에게는 기대와 흥분을 선사한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그런 진정한 우연을 싫어한다. 본인이 예상했던 방향으로 무사히 하루 일정이 끝나기를 기원한다.
젊은 시절 여행하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계절 변하는 주변 풍경과 매일 바뀌는 노선에 즐거워하며, 직업으로서의 시골버스기사에 큰 매력을 느낀다.
물론, 지금도 매력적이지만 기사 생활 초기 몇 개월처럼 환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 년 반이 지나니 남이 만늘어 놓은 시공간을 계획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나도 간이 점점 쪼그라져 간다.
이런 익숙함이 나이 먹어감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