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왕자

by 한지원

(제1 장)

동해 깊은 물에 사시는 용왕님은 아들 셋을 두셨다.

금이, 은이, 동이 이렇게...

왕비는 미스 태평양 출신으로 훤칠한 키와 하얀 피부, 그리고 아리따운 꼬리지느러미를 갖춘 분이었다.

왕비가 젊었을 때는 동해 용왕 배 수영대회에서 여성부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왕족은 왕족 친인척이나, 귀족과 결혼해야 한다'는 왕실의 법도가 있었으나, 용왕은 지금의 왕비에게 홀딱 반하여 왕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민과 결혼하여 지금의 세 아들을 두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 아들 모두 훤칠한 기럭지와 넓은 꼬리지느러미가 매력적인 청년들이다.

그런데,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는 머리숱이 적은 데다가, 듬성듬성 탈모가 진행되어 대머리가 될 확률이 높아 보이고 배도 불룩한 것이 용왕의 외모를 빼다 박았다. 그러나 셋째 동이 왕자는 왕비의 유전자를 받아 빛나는 외모와 다정한 성격, 부드러운 음성 등, 특히 은빛으로 빛나는 꼬리 비늘은 제주도 은갈치 못지않게 빛이 나서, 해저 세상의 사교계에서 인싸로 통한다.

그래서 동이 왕자의 침실 창문 밑에는, 동이 왕자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매일 밤 인어 아가씨들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친다고 한다.


"동이야! 너는 아직 여자 친구 없냐?"

금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형님! 저는 인간 여자가 좋아요! 얼마 전 독도까지 놀러 갔다가 배 위에 있는 여자를 봤는데, 지금도 꿈속에 나타나요!"

"이거 큰일 났네! 옛날 우리 조상 할머니 중 한 분이 인간 남자를 좋아하다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하던데... 우리 동이가 그러면 안되지!"

"형님! 한 번 같이 가서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까짓것... 가보자! 둘째 은이도 같이 가자고 하자!"


그래서 금이, 은이, 동이 세 왕자는 독도에 정박해 있는 요트의 인간 여성들을 보기 위하여 부지런히 헤엄쳐 나아갔다.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되어 보름달이 수평선에 서서히 떠올라 모습을 드러낼 즈음에야 도착하였다.

요트는 그렇게 크지도 호화롭지도 않았지만, 좋은 음악과 인간 여성의 목소리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섞여 아름답게 보였다.

그 순간 한 여성이 배의 이물(船首, 배의 앞부분) 위로 얼굴을 내밀고 컴컴한 바다를 보았다. 달빛에 비치는 얼굴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해저세계의 여성 인어들과는 다른 차원의 기묘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막내 동이가 반할 만한 미모를 갖춘 인간 여성이었다.


"아가씨! 여기 좀 보세요!"

금이가 말을 걸었다. 용궁에서 쓰는 10Hz짜리 저주파음은 인간의 가청주파수(20~20,000Hz) 범위를 벗어나, 인간은 들을 수가 없어 가성으로 말을 건넸다.

인간 아가씨는 너무도 당황하여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그 순간 금이 왕자가 다시 말을 하였다.

" 고개를 숙여서 바다를 보세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용궁의 인어왕자 형제들입니다.

우리 막내 동이 왕자가 당신을 보고 당신에게 반해서 병이 날 지경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가씨는 배 아래쪽으로 머리를 숙이고 인어왕자 형제들을 보았습니다. 특히 동이 왕자에게 눈길을 주었는데, 첫눈에 동이 왕자에게 반한 눈치였다.

이렇게 동이 왕자와 인간 아가씨는 첫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후에도 아가씨가 그곳에 오는 날이면 동이 왕자는 인간 아가씨와 밤새도록 사랑을 속삭였다.


인간 아가씨가 타고 온 요트는 고물(船尾, 배의 뒷부분) 쪽이 바다로 다이빙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데크가 달린 모델이다. 동이 왕자와 인간 아가씨는 나란히 데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자님! 꼬리는 생각보다 엄청 크네요! 색깔도 이쁘고요!"

"나는 아가씨의 날씬한 다리가 부럽습니다."

사실 인간 아가씨는 하얀색 비키니 수영복을 입었는데, 누가 봐도 반할 만큼 훌륭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아! 아가씨는 이름이 뭐예요!"

"성마리!"

"참! 이쁜 이름이어요!"

"마리 님이 여기에 오시면 제가 항상 나와서 마중을 하겠습니다."

"어떻게 제가 바다에 오는 줄 아시나요?"

"하! 하!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리의 집은 부산이고, 몸 약한 남자 동생과 마리, 그리고 부모님 네 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마리의 아버지는 바다를 좋아하는 마리와 자신의 아내를 위하여 거금을 들여 요트를 장만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금의 장소로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바다여행을 온다고 했다.


"마리야 누구랑 얘기하니?"

선실에서 인간 아가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달빛이 좋아서 그냥..."

"그럼 동이님 다음에 만나요! 그럼 이만..."

많이 아쉬웠지만 동이 왕자는 마리 아가씨하고 즐겁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마도 해저세계에서 육지의 인간과 이렇게 많이 대화를 나누어 본 인어는 지금껏 없었을 것이다.



(제2 장)

'김수철'

이것이 그의 본명이다.

업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쇠(金) 같다는 의미에서 '김철' 이라고도 부른다.

김수철이 하는 사업은 호텔 카지노 두 개와, 부산에서 가장 큰 주류도매상, 나이트클럽 몇 개, 그리고 매춘과 마약까지... 소위 돈 되는 어둠의 사업은 모두 갖고 있었다. 그 사업을 운영하는 데는 사용되는 돈뿐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주먹들도 따로 관리하는 조직을 갖고 있다. 그러하니 부산지역에 기생하는 모든 폭력조직은 김수철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고, 관공서나 경찰, 특히 부산지역 검찰은 김수철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자신들의 출세와 치부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산지검에 근무하는 검사들에게 김수철은 노다지 광산으로 불린다.

부산 지청 반부패 강력 수사부를 거쳐간 검사 치고 김수철 돈을 안 먹은 놈이 없다고 했다. 부산지역 화류계 여성 치고 부산 지청 검사들하고 안 놀아본 여성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김수철의 작품이다.

김수철은 항상 검사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느라, 외형상 번듯한 사업체를 갖고자 노력했다. 그중에 부산지역 중견 냉장 업체인 'JH냉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위치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창고가 있을 뿐 아니라, 최소 20,000 ton급 화물선을 접안할 수 있는 단독 dock시설이 있어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특히 마약밀수에는 전용 계류장이 필수였다.

그러나 'JH냉장'은 회계상으로도 건실하고 자금사정도 나쁘지 않아, 함부로 건드리기 만만치 않은 업체이다. 몇 번 부하들을 보내 얼르고 겁도 줘봤지만, 별 무소득이었다.

부산 토박이이자 자선사업가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성진훈'이라는 자가 'JH냉장' 대주주 겸 대표를 맡고 있었다.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로 아내와 결혼 후 한 번도 여자와의 구설에 오르지 않은 애처가로 알려져 있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와 딸을 위하여 작은 요트를 구매했다고 한다. 날씨만 좋으면 일 년에도 몇 번씩 울릉도나 독도 근처까지 항해를 갔다 오는 것이 유일한 취미 생활이라고 했다.

" 행님! 이번에 '윤학'이라는 검사가 강력부 부장검사로 부임한다는데 아주 독종 이라 소문 났십더!"

"그나, 저나, JH냉장은 워떻게 되어 가냐?"

"...."

'새로 부임한 검사 새끼들 실적 올릴라꼬, 아주 지랄을 떠는데, '윤학'이란 놈 오기 전에 어떻게 좀 안 되겠나?"

"안 그라믄 돈 좀 멕이면...?"

"윤학 검사 재산이 백억이 넘을 거라고 하던데... 돈 좀 먹여서 될 일은 아닐 것 같고, 마! 그런데 여자는 밝힌 뎁니다. 서울에 여편네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아주 지저분한 놈이라고 합니데이."

"거참 이번에도 고생 좀 해야 겄다."


그런 김수철에게 희소식이 찾아왔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의 격납건물 멜트-스루(cotainnent melt-throuh)로 인하여 주변 바다가 오염되고, 일본 해산물의 한국 수입 금지 조치가 내린 것이다. JH냉장의 주요 수입원인 일본산 해산물의 수입과 유통 사업이 올 스톱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은행 대출을 받아 장만한 제3창고의 이자 및 원금과 새로 시작한 가공 공장마저 가동 중단 위기에 놓이면서 JH냉장은 상당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JH냉장은 제3창고의 구매자를 수소문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실장한테 부산지역 부동산업자들 소집해서 JH 건 거래하면 재미없을 거라고 얘기하라고 해!"

" 그리고 JH에 자금 대주는 놈 제 명에 못 살 거라고 겁 좀 주고..."


성진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수철이 자신의 사업체에 눈독을 들인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미리 알고 있었지만, 사태가 이렇게 진전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김수철에게 자신의 사업체를 모두 상납하고 자신과 가족을 김수철에게 의탁하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그릇된 판단을 한 것이다.

"김수철 사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아이고! 성 사장! 어서 오시게! 어인 일로 누추한 여기까지?"

"제 냉장사업 전 부문을 사장님에게 넘기고 싶습니다. 가격은 현재 값어치의 반으로..."

"내가 미쳤나! 다 망해가는 업체를 인수하게... 딴 데가서 알아보쇼! 인수는 안 되겠고, 그 대신 내가 돈을 꿔 드리리다. "

김수철은 완전히 거저먹겠다는 심산으로 현금 차용증을 내밀었다.

"싫으면 관두고!"

"아니요! 하겠습니다."


그 돈으로 JH냉장의 정상화는 불가능하였지만, 성진훈은 이미 모든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회사는 3개월 만에 부도가 나고...

회사가 부도 처리된 그날 새벽 성진훈은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JH냉장 메인빌딩 도크바닥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냉장창고 옥상에서 동트는 바다를 바라보며 몸을 던진 것이다. 일생을 바쳐서 일궈온 사업과 가족을 생각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제3 장)

마리가 타고 있는 요트가 동해에 오는 날은 동이의 생일과도 같은 분주함이 있었다.

"오늘은 마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지?"

평상시에는 용궁 내에 있는 이름난 이야기꾼을 불러들여 마리에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외우고 다녔다. 동이의 모든 일과는 오롯이 마리를 만나는 날짜에 맞추어 진행되다시피 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마리 아가씨 생각뿐이고, 용궁의 생활은 마리를 만나기 위한 준비 시간일 뿐이었다.

용궁의 경비대 병사들은 수십 킬로 바깥에서도 마리가 타고 있는 요트를 식별하기 위하여, 요트의 외형 실루엣을 숙지하는 것도 경비병 임무의 하나가 되었고, 발견 즉시 동이 왕자에게 보고 되고 있었다.


"형님!"

"왜 동이야?"

금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 물었다.

"혹시... 제가 인간이 되는 방법이 없을까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직감한 금이는 자신이 인간 아가씨와 동이를 만나게 해 준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려, 어떻게든 동이의 사랑을 이루게 해주고 싶었다.

" 동이야! 부산 해운대 '달맞이 길' 밑의 절벽 바닷속으로 입구가 열려있는 동굴이 있다. 거기에 예전에 용왕님이 내쫓은 마녀 할머니가 살고 있는데,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동이는 금이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행동에 옮겼다.

하루 밤낮을 꼬박 헤엄쳐 도착한 동굴 입구에는 무겁고 음습한 기운이 흘렀다.

"나는 네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데, 조건이 있어!"

마귀할멈은 동이가 그동안 겪었던 일이며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무슨 조건인데요?"

"나도 인간으로 변하는 물약을 만드는데 원가가 많이 들어서 시원찮은 거 받아야 남는 거 없어. 그리고 요즘 원자재 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공짜는 안 되겠고, 네 것 중에 돈이 될만한 걸 내놔야 되겠는데..."

"망간니즈 단괴(Manganese nodule)나, 망가니즈 각(MManganese crust) 채굴권을 드리면 안 될까요?"

"그런 건 인간세상에서나 노다지지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혹시, 너의 잘생긴 외모를 내놓으면 모를까?"

동이는 인간이 되어 마리를 만날 욕심으로 기꺼이 조각 같은 자신의 외모를 마녀에게 주었다.

영화배우 장동건 같은 외모에서 영화배우 유해진의 외모로...

'설마 마음이 그대로인데, 외모가 좀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런데, 마리 님이 날 몰라 보면 어떻게 하지! 아니, 그래도 내 눈빛은 알아볼 거야!'

동이는 자신을 달래면서 마녀에게 물약을 받아 들고 동굴을 나섰다.

그러나 마녀와 헤어지기 전 마녀가 동이에게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만일, 일 년 내에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거나, 마리가 자신이 동이임을 알아채기 전, 동이가 자기 자신임을 암시하는 얘기를 하거나, 마리가 동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경우 두 사람 모두 물거품으로 변한다고...

동이 자신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마리가 죽는다는 말이 동이의 마음을 많이 껄끄럽게 만들었다.

한 밤중 광안리 모래밭에 도착한 동이는 마녀가 준 물약을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깜빡 정신을 잃은 것도 같았는데, 주변에 깔깔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잠이 깼다. 새벽이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인간 젊은 여자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어디 숨을 곳이 필요했다. 해변가의 가까운 횟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아직 영업을 하지 않아서 다행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빨랫줄에 널려있는 목이 다 헤진 티셔츠와 무릎이 구멍 난 바지를 걷어서 입었다. 그리고는 인간세상을 구경하기 위하여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보이고 상가의 쇼윈도에는 사람 모양의 마네킹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앞을 두 다리의 인간들이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꼬리지느러미를 슬로 모션처럼 우아하게 천천히 움직이던 물속 세계의 인어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경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거울 앞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동이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거울 앞에는 추레하고 지저분하며, 거지 행색의 웬 남자가 서 있었다. 인간이 되기 전의 모습은 오롯이 눈 빛 하나밖에 없었다. 마리와 대화할 때의 기억을 살려 마리의 집주소를 생각해 내고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4 장)

"사장님! 부산 검찰청 윤학 검사라는 분이 전화하셨는데요! 받으시겠어요?"


"에이! 씨발! 일단 바꿔봐!"

"아이고! 검사님! 김수철 입니더. 부산지청으로 오셨다는 야그는 들었는디, 지가 먼저 인사 전화한다카이...

이거 죽을죄를 졌습니데이. 죄송합니데이."

"그람요! 네! 네! 검사님 면 살려드려야제! 기대하시쇼! 제가 검사님 평생에 잊지 못할 기막힌 이벤트 만들어 보겄습니더!"

"야! 이실장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애 세, 네 명 하고... 그리고 하!... 이 새끼는 누굴 붙이냐? 신선한 애를 찾는데..."

"행님! 걔 있잖아예? 성 사장 딸..."

"성 사장 죽고 나서 아픈 애 수술비 한다고 우리한테 빌려간 돈 몬 갚아,지가 성 사장 마누라 섬에 팔아먹는다고 했다고 안 했습니꺼!

그랬더니, 딸내미가 엄마는 그냥 두라꼬...대신에, 지가 시키는 건 자기가 뭐든 한다꼬 했십니더.

엄청난 미인이던 데예!"

"그~래! 성 사장 요트 우리가 접수했지? 아무도 없는 공해상에서 환락의 파티 한번 열어 줘삐라! 뽕도 좀 준비하고..."

"네 행님! 잘 알겄습니다."


(제5 장)

동이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마리가 살고 있다는 동네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몰골을 인지하고 있던 터라 마리에게 연락할 방도를 찾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한 일 없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마리가 살고 있다는 단지 내의 공원에 죽치고 있어다. 공원 한편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그네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동이가 있는 공원에 마리가 나타났다.

"마리 아가씨! 저는 용궁의 동이 왕자님 메시지를 전달하러 수중세계에서 온 마리 왕자님의 비서입니다. 몇달 동안 마리님 모습이 안 보인 신다고 동이 왕자님의 걱정이 대단하십니다. 제가 인간 눈에 띄지 않게 변장을 하고 오느라 몰골이 형편없지만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마리가 고개를 들어 동이를 보았을 때, 동이의 눈에는, 너무도 많이 울어 눈이 퉁퉁 불어 있는 마리의 눈만 보였다.

그 간의 이야기를 동이에게 다 털어놓은 마리는 그나마 홀가분해 보였지만 앞으로의 헤쳐갈 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리 아가씨! 그 놈들과 언제 바다로 나가기로 하셨나요?"

"내일 이랍니다."

동이 마음이 바빠졌다.

"너무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으니, 마리 아가씨는 내일 일정대로 행동 하셔도 됩니다!"

동이는 형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동행하는 여성들의 안전을 신신당부하였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에 부산항을 떠난 낚싯배 한 척이 동해시 앞 50마일 공해상에서 전복되어,

동승했던 여성들 4명을 제외한 모든 승객이 실종되었습니다. 실종자들 중 부산지검 윤모 검사와 부산지역의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 모 씨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해경은 생존한 여성들을 불러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동이는 마리의 남겨진 가족들을 성심 성의껏 보살폈다.

동이는 자신의 몫으로 용왕이 떼어준 해저 대륙에서 채굴한 망간 단괴를 팔아, 마리의 집안을 성 사장이 자살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마리도 처음에는 동이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동이에게 맘이 끌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이에게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녀가 언급한 최후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비서님! 우리 오랜만에 바다에 가면 안 될까요?"

동이는 작은 요트를 빌려서 마리와 단 둘이 예전에 처음으로 만났던 독도 근처까지 항해하였다.

그날도 동이 왕자와 마리가 처음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던 날처럼 보름달이 훤하게 밤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저는 비서님만 보고 있으면, 제가 사랑하던 동이 왕자님이 생각나요! 비서님 눈빛은 동이 왕자님과 똑같은 것 같아요!

저는 비서님이 참 좋아요. 그렇지만 저는 비서님을 사랑할 수 없어요! 제가 비서님을 사랑하면 동이 왕자님을 배신하는 거예요!"

마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였다.

동이는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지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힘들게 동이에게 모든 말을 마친 마리는 도망가듯이 배 난간을 뛰어넘어 바다에 몸을 던졌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동이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동이도 마리를 따라 바다에 몸을 던졌다.

"마리 님! 제가 동이예요! 어디 계세요? 마리 님! 마리 님!"

동이 왕자의 애끓는 목소리는 밤바다에 메아리치며 점점 멀리 퍼져나갔다


(제6 장)

동이야! 동이야!

멀리에서 동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왕비의 목소리였다.

"아니, 어떻게 어머니가 여기까지 오셨지? 형들이 모두 말씀드린 모양이네!"

왕비의 목소리를 들으니 동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는가 싶더니 왕비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어렴풋이 형상만 보이다가, 금발의 하얀 왕비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발의 찰랑거리는 머리는 어느새 까만 파마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더니 엄마의 손바닥이, 엎드려서 마리를 쫓느라 양손을 쉼 없이 휘젓고 있던 동이의 벌거벗은 상체에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고3이라는 녀석이 공부는 안 하고 대낮부터 여자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꿈을 꾸나?"

"마리가 뭐 어쨋다고 헛소리야! 도대체 마리가 어떤 년이냐?"


꿈속을 헤매던 동이는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아!~꿈 좋았는데..."

"그만 자고 빨리 일어나! 너 오늘 오후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안 했어!"

'아차! 오늘 반 애들하고 영화 보러 간다고 했지!'

옷을 챙겨 입고 신고갈 운동화를 신발장에서 꺼냈다.

"그래! 기분이다. 오늘은 이거 신고 가야지!"

그동안 안 신고 아껴두었던 유명 메이커 운동화를 신발장에서 꺼냈다. 거의 반년치 용돈을 아껴 사두었던 한정품 운동화이다.

'어! 이제 보니 환한 은색이었네...'

그 운동화는 제주도 은갈치처럼 은색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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