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무척 부끄럽다.
얼마나 기술적 흠이 많고
비전공자의 호기로움만 가득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빠가 물었다.
너는 니 그림을 10년 뒤에 보면 어떨 것 같아?
나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때도 이것을 그렸을 때의 감각과 감정,
내외부로 느꼈던 정신적, 육체적 작용들이 모두 환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말 못그렸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 아빠
만족스러워
아빠의 얼굴이 환해졌다.
네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것을 찾은 거 같다고.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본성대로 살기
어떤 목적도 없이 그려진
이 후줄근한 그림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웃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남들이 잘한다고 해도
싫었던 게 많았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칭찬들을 일도 없는 마당에
정말 하고 싶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들을
시작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었다.
내게는 무의미 했다.
세상에 나란 사람이 하나 더 있는 것은
기후 위기를 앞당길 뿐이었다.
아빠는 앞으로의 선한 영향력이 기대된다고 했다.
(ㅎㅎ 아빠? 무슨말이지...역시 사랑이란 놀랍도록 비이성적이다. )
그런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뇌는 무슨 말이야 물음표를 찍었지만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환하게 번지었다.
그리고 그 밤 자려고 누웠다가
나는 사랑하는 친구가 생각이 났고
너무 선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를 그려야겠다
마음먹고 생애 첫 아크릴 인물화를 그렸다.
그런데
놀랍도록
우울하고
입이 없는
아주 자아감이 낮은 인물이 그려졌다.
도무지 이 그림은 당사자에게 보여줄 수 없었고
이것이 그 친구인지 나인지 누구인지 헷갈렸다.
다른 친구에게 이것을 보내보았다.
자화상이야?
친구를 그리려고 했는데 뭐가 그려진 건지 모르겠어.
되게 우울하네
응.
이 그림은 2025년 3월 28일 새벽에 그려졌다.
1년 뒤, 10년 뒤에
내가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아빠의 질문처럼 궁금해졌다.
이게 누구일지 그 때는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