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모이셨나요?"
정확히 1시간 30분이 지나고 까사바트요에 사람들이 모였다. 선배는 한사람씩 체크해가며 혹 미팅시간에 오지 못한 인원이 없는지 세심하게 체크중이다. 나른한 오후 샹그리아를 먹고 온 손님 한분은 얼굴이 스페인 태양처럼 발그레한 상태이다. 혹 투어중 쓰러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정도. 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자 이제 3블록 올라가면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린 츄파춥스 사탕도 드시면서 산책하듯 즐겁게 그라시아 거리를 걸어보겠습니다. 오후의 음악. 샹젤리제~"
선배가 선곡한 샹젤리제가 이어폰을 통해 귓가로 흘러들어온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샹젤리제 거리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그라시아 거리. 그라시아 거리를 걸으며 파리 샹젤리제를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음악을 들으며 걸으니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는 것같다. 나른한 오후에는 역시 음악을 들어야 한다. 음악이 주는 위로와 힘은 언어보다 강력하게 삶을 스며 올때가 있다.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가우디가 1906년부터 1912년까지 건축한 까사밀라입니다. 여기는..."
선배의 말은 계속이어지지 못했다. 이미 아름다운 가우디 작품에 취한 손님들이 너도 나도 지그재그 병렬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손님들 근처로 가서 사진을 찍어준다. 나 역시 다니엘과 같이 혼자온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포토타임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Take a picture here'
얼굴이 백옥처럼 하얗고 키카큰 금발의 미녀가 까사밀라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의 시선은 모두 그녀를 향해 있었다. 철봉과 같은 건축구조물에 기대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그녀를 보며 르네상스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다양한 표정을 취할 수 있을까?' 마치 전문 모델처럼 사람들이 보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진 찍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모이세요. 설명시작하겠습니다."
여성에게 향해 있던 시선은 다시 선배를 향했다. 선배는 강렬한 태양이 비치는 오후시간에 차양막이 드리워진 그늘이 있는 곳으로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센스있는 선배의 안내로 시원한 곳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까사밀라는 밀라네집입니다. 밀라씨는 부동산 으로 부자가 된 인물이었죠. 그는 까사밀라에 6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짓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가우디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죠. '가우디씨 바트요네집 보다 우리집을 더 멋지게 만들어주세요!'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것 같다. 바트요나 밀라나 결국 마음은 똑같은 것 같다. 부자들은 자신의 집을 예쁘게 포장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라시아 거리는 '부자들의 욕망이 빚은 건축'이다. 비단 스페인뿐일까.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과시욕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사실을 가우디투어를 들으며 깨닫게 된다.
"가이드님, 지금도 60세대가 거주 하나요?"
"아닙니다. 지금은 1세대만 거주하고 있어요."
"나머지 59세대는요?"
"사실은..."
선배의 말은 이러하였다. 60세대를 목표로 하였지만, 실제로 분양된 세대는 3세대뿐. 왜냐하면,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곡선이 굽이치는 돌산모습에 사람들은 흥미가 없었다. 까사밀라는 심지어 언론에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동물이 사는곳이라고 악평들을 쏟아내었다. 돌을 캐내는 채석장이라는 별명은 지금은 까사밀라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La Pedrela' 지금도 충격적인 까사밀라의 외관은 100년전에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로 다가간듯 하다. 까사바트요는 동화같은 매력으로 화재성이 있었지만, 까사밀라는 그렇지 못했다.
"3세대만 들어왔다면 손해가 많았을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로인해서 어려움을 겪은 밀라씨는 밀라네집을 은행에 매각하게 되었죠."
60세대가 들어올것을 기대하고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린 밀라씨. 하지만 3세대 밖에 분양이 되지 않았다. 결국, 분양실패로 인해서 밀라씨네집은 은행에 매각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밀라네집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한가지가 더있다.
"밀라네집이 분양이 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외부만 곡선이 아니라 내부도 곡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가구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불편하였다고 합니다."
엄청난 인사이트다.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특히, 여성들은 서랍이나 소파같은 가구들에 관심이 많다.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성들이 100년전에 밀라네 모델하우스를 방문했을때, 기대는 실망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가구들이 집 내부에 제대로 배치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때, 밀라네집은 그녀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였다. 그래서 분양은 실패하였다.
"가우디는 유기체같은 건축을 꿈꾸었습니다. 마치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랏트 산 같이 말이죠. 까사 바트요가 지중해 바다를 표현한 건축이라고 한다면, 까사밀라는 지중해 산을 표현한 건축입니다."
"가이드님, 가우디 작품은 멋지기는 하지만 사는 사람들을 너무 배려하지 않은것 같네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까사밀라는 6층까지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하주차장까지 완비가 된 곳이었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밖에서 벨을 누르고 누구인지 밝히면,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초인종시스템도 갖추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 아파트에서 누리고 있는 대부분을 가우디는 실현시켰다. 그는 예술적으로 작품을 만드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능에 충실한 건축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자연은 가장 완벽한 예술이고 기능이었다. 그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까사밀라이다.
"그럼 까사밀라와 까사바트요중에 어디를 들어가야 할까요?"
"솔직히 말하면 둘다 들어가서 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작품과 내부에서 만나는 작품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때는요?"
"취향에 따라 선택하세요. 예쁜것을 원하면 까사바트요를, 건축의 매력을 원하면 까사밀라를"
선배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화려하고 멋진 건축은 까사바트요를. 건축의 미학은 까사밀라를.
난 두곳을 다 들어갈 예정이기때문에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행복했다. 이렇게 멋진 작품들을 들어가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다.
"까사밀라 작품의 정점은 옥상의 다스베이더 군단들과 중정구조입니다. 내부들어가시는 분들은 꼭 살펴보세요"
가우디가 만든 굴뚝 모향의 조각을 보고 스타워즈의 조지루카스 감독은 다스베이더 군단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에게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관찰하는 힘이 있는것 같다. 사진으로본 중정은 너무 멋졌다. 가우디는 빛이 신이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는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반영한 건축이 중정구조이다. 이슬람식 건축에서도 많이 보이는 형태이다. 특히 알함브라 건축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보고 싶다. 언제쯤 스페인 남부를 갈지 모르나, 꼭 가고 싶다.
"지금 들어갈 수 있나요?"
"죄송하지만, 투어가 끝나고 들어가셔야 할것 같습니다."
그라시아 거리에서의 가우디 투어가 끝났다. 이제 남은 작품은 단 하나.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 Va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