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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의책 Oct 18. 2024

바르셀로나 까사바트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선배와 손님들과 함께 그라시아 역을 향한다. 가방을 앞쪽으로 빼고, 주변에 소매치기가 없는지 살핀다. 다들 피곤했는지, 의자를 보자마자 달려가 앉는다. 나는 한쪽에 기대어 선배의 멘트를 노트에 적었다.


"지금 이동하는 바르셀로나 지하철은 1926년에 개통을 하였습니다.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며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죠. 그중에 3호선은 여행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라인입니다.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와 신시기자리를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고 있다. 눈을 감고, 땅을보고, 선배를 보고, 다들 저 마다의 방식으로 투어를 즐기는 중인것 같다.


"이제 내려야 합니다. 모두 일어나세요!"


선배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수신기를 통해 전달되자, 손님들은 모두 일어나서 선배쪽을 향한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어두운 지하철을 걷다보니 한줄기 빛이 쏟아지는 곳이 나왔고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한줄로 서세요. 바쁜 분들을 위해 모두 왼쪽으로 한줄서기 해주세요!"


선배가 앞장서서 전진하자,모두 칼군무를 하듯 빠르게 왼쪽 한줄서기를 한다. 나는 그 뒤를 마지막으로 쫓아가며 손님들을 케어했다.


'가이드님!! 여기는 람블라스랑 느낌이 완전 다르네요'

'부자동네 같아요'


'맞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부장 동네 중 하나입니다.'



옛스러우며, 엔틱한 느낌의 람블라스보다 조금 더 화려하고 멋진 건물이 많은 그라시아 거리에 손님들은 분주해 보인다. 셀카를 찍거나 동영상 촬영을 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어 보인다.


'설명부터 하고 점심시간 드릴꺼에요. 모두 집중하고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힘있고 또박또박한 선배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손님들은 다시 선배곁으로 모인다. 그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된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목소리의 힘을. 나도 가이드가 되면 선배처럼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부드럽지만 단단한 내공의 선배가 많이 부러웠다.


"가우디가 만든 까사바트요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건 그라시아지역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라시아 거리가 부자들의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까사바트요에 살았던 인물역시 부자중의 하나였고요. '까사'는 '집'이고 '바트요'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한마디로 '바트요네집'이죠..."


선배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19세기 유럽의 부자도시 바르셀로나에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그 이름이 그라시아거리. 


신도시가 만들어지자 땅값이 오를것을 기대한 부자들이 제일 먼저 그라시아 거리를 선점. 그래서 바트요나 밀라같은 사람들이 가우디를 찾아갔다. 


'가우디씨, 이 동네에서 가장 멋진 집을 지어주세요' 그들의 부탁을 받은 가우디가 까사밀라, 까사바트요와 같은 집을 짓게 된것이다.



'가이드님, 부자들의 집인걸 알겠는데요, 왜 이렇게 가우디는 특이하게 까사바트요를 만들었나요?'

"그 이유는 가우디가 밝히지 않았지만, 3가지중 하나로 예상됩니다.  


    뼈로만든집  


    지중해바다집  


    용이사는집  


가우디는 인체해부학에 관심이 많았죠. 왜냐하면, 가우디형이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 뼈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안정적인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실험이 보여지는 공간이 까사바트요죠. 보시면 어떠세요? 해골바가지 테라스 보이시죠. 중간에 있는 기둥은 어때요? 사람 다리같지 않나요?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왜 뼈로 만든집인지 느끼실 수 있습니다."


'가이드님, 뼈는 그렇다치고, 바다는 어디있나요?'


"지중해 바다는 여러분이 보고 있는 집 벽에서 다양한 장식들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제대로된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내부로 들어가 보셔야 합니다. 특히나, 채광창이 있는 중정은 바다물 속 깊이 빠져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내부 입장은 비싸지 않나요?'


"가격이 싸지 않습니다. 입장료가 한화로 30,000원이 넘기 때문이죠. 하지만 들어가서 보시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실겁니다. 우리가 상상하는것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과 장식이 눈앞에 펼쳐지니까요."


'저 지금 들어갈 수 있나요?'


"점심시간 드릴 예정이에요. 점심드시고 보실 분들은 입장해서 보세요. 천천히 느긋하게 보실 분들은 오늘 투어 끝나고 나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뼈로 만든집은 지붕을 보셔야합니다. 과거에..."


과거에 카탈루냐에는 용이 있었다. 그 용이 마을로 내려와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회의가 열렸고, 회의결과 한달에 한번 처녀를 용에게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용의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렇게 마을 처녀들은 한달에 한번 산채로 용에게 바쳐졌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된 기사는 처녀를 구하기위해 용을 찾아간다. 


그시각, 왕국의 공주가 제비뽑기를 통해 선출되어 용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용에게 도착한 공주가 산채로 잡아먹히려는 순간. 섬광한줄기가 번쩍하며 용에게로 향했고, 용은 기사의 검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용의피가 떨어진 자리에 장미꽃이 피어났고, 기사는 장미를 꺾어 공주에게 청혼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용이 사라진 카탈루냐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뭐 이런 뻔한 이야기가 있나."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혼잣맛을 했다. 완전히 예상가능한 기사와 공주의 러브스토리다! 

어린시절 엄마가 읽어주었던 동화책과 하나도 다를것 없는 이야기. 결국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야기는 똑같은 것 같다.


'가이드님, 아직 바트요씨가 사나요?'


"아니요. 지금은 츄파츕스 회사가 까사바트요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츄파춥스 아시죠? 그 로고도 살바도르 달리라고 하는 예술가가 그린 작품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선물하나 드리겠습니다."




선배는 능청스런 멘트를 하며, 츄파춥스를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손님들은 별거 아닌 막대사탕하나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배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순간. 흔한 막대사탕은, 명화처럼 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언제쯤 선배처럼 노련한 멘트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가이드의 역량에 따라 투어의 질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되었다.


"빠에야 드실분들은 El Glop"

"타파스 드실분들은 Vinitus"

"스테이크 드실분들은 Patagonia

1시간 30분뒤에 만나요~"


정신없이 선배를 따라다니느라, 배가 고픈줄도 몰랐다. 선배가 점심시간이라고 말하자 마자, 미친듯이 뱃고동 소리가 배에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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