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_쿠스코_Cuzc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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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여행 | 리마 - 와라즈 - 쿠스코 Cuzco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하지 않았던 '틈새'의 시간들이 기가막힌 추억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삶도 내가 채우고 싶은 것들로만 꾸역꾸역 채우지 말고, 가끔씩은 뜻밖의 만남이나, 뜻밖의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 틈새의 시간들을 만들어보면 오히려 더 큰 행복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렵겠지만, 마음을 조금만 편하게 먹고, 내 삶 속 일부를 그저 굴러갈대로 굴러가보라는 식의 여유 공간으로 던져두는 것. 나도 몰래 차단해버렸을 행복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삶의 지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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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을 떠나기 전날부터 갑자기 공항 티켓 사이트에 접속이 안되는 문제가 터졌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쿠스코행 경비행기를 탔다. 우여곡절 도착한 도시 쿠스코에서는 곧바로 우루밤바 지역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야타이탐보'로 가서 예약해둔 마추피추행 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우리는 버스와 택시 중 고민을 하다가, 조금 비싸더라도 기차 시간을 놓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택시를 잡기로 했다.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잡은 우리 남매. 출발할 땐 몰랐다. 그건 정말 완벽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왼편은 평야, 오른편에는 빙산이 늘어선 풍경이 펼쳐졌다. 평야와 빙산의 정중앙을 달리는 택시의 경치라니. 상상해본 적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하는 주택가의 벽화들은 알록달록 원색의 미를 뽐내며 동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들 낙서같기도 하고, 예술 작품 같기도 한 독특한 디자인인은 페루 고유의 깨끗한 순박함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날의 택시 드라이빙은 우리가 살아가며 끊임없이 세로운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하여 대문 밖으로 뛰쳐나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도록 만들어준 강렬한 순간으로 남았다. 대한민국 서울에 머물러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과 디자인들을 마주했고, 이로써 나중에 어느 때에라도, "쿠스코의 빙산과 평야의 정중앙을 가로지는 통쾌함" 이라든지 "페루 벽화 느낌이 난다"는 등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표현법을 활용할 수 있는 인격체로서 경험의 폭이 확장된 것이다. 문을 다 내리고 불러오는 바람을 맞아가며 온몸의 감각들을 열어제쳐 놀라운 영감의 순간을 만끽했다. 이렇게 또 다른 세계의 미를 만끽한다.
난데없이 즐겨버린 2시간 여의 택시 드라이빙은, 지금도 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돌려야만 하는 이유를 상기시켜주는 가슴 벅찬 영감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택시 이동을 마치고 도착한 마을, '오야타이탐보'에서는 반나절 정도 남은 여유분의 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며 쉬려고 계획해둔 것 말고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과거 잉카 제국 시기 상류층이 모여 살았던 땅 오야타이탐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우리 남매의 입에서 또 한 번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3800미터 고산지대의 산 중턱에 만들어진 마을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산들이 중앙 광장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었다. 쿠스코의 산맥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될 줄이야. 스페인이 침략했을 때 잉카 제국의 요새가 되어 스페인군을 물리친 분지 형태의 고산 마을, 오야타이탐보의 역사가 저절로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장대한 산맥의 경치 뿐 아니라, 돌벽들이 늘어선 골목 골목의 거리들이 마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골목길이 아름다운 것이 곧 최고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골목길이, 별다른 기대감이나 계획조차 없었던 작은 마을, 오야타이탐보의 여행지에서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
2시간이나 내달린 택시 여행에 이어, 반나절의 여유 시간 동안 정처없이 마을을 거닐었던 우리 남매. 그날은 유난히 '틈새'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틈새'가 존재했기 때문에, 예상치 못했던 순간들이 우리의 여행기 사이로 스며들어 누구도 기대치 않았던 놀라운 하루의 여정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삶을 꾸릴 때도,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혹은 누군가가 좋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너무 꽉찬 바구니를 만들어내지 말자.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신도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람과의 만남이든, 커리어든, 결혼이든, 아이를 키우는 일이든, 너무 팍팍하게 굴지 말고, 언제나 일부의 공간들을 남겨 둔 채 나도 모를 무언가가 찾아올 수 있도록 "미정의 틈새"로 벌려두는 것. 그동안 미련하게 막아버리고 있었을지 모를 뜻밖의 행복들이 날아드는 창가가 될 수 있다.
2018/7/3/화요일의 기록
기념품을 두개 샀다. 하나는 내가 아끼는 친구에게 줄 선물로,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매달고 다닐 꽃모양의 키링이다. 마을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색감과 디자인이라 고민 없이 집어왔다. 돈도 없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