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라이프]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A Little Life]
by Hanya Yanagihara
읽는 내내 책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힘들어서 몇 주간 쉬기도 하고, 놓지 못해 하루 종일 읽기도 했다. 울기도 많이 울고, 계속 피식피식 웃어대는 통에 옆에서 뭐가 그리 재밌냐 묻는 남편에게 소설 안의 context를 다 설명하기 어려워 그냥 대충 둘러댔다. 근 몇 년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힘들었고, 가장 좋았으며, 가장 아름다웠다.
우리는 살아가며 사랑과 믿음을 쉽게 말하곤 한다. 당연히 여기고, 때때로는 우습게 여기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사람을 믿는다는 것, 사랑하는 것,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내맡기는 것은 사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즉시 우리는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그 사랑을, 이 행복을 혹은 그 사람을 잃게 될까 불안에 휩싸인다. 어떤 관계가 시작되면 그 끝을 상상하며 준비할 때가 있고, 가장 행복한 그 순간에 그 행복의 부재가 불러 올 슬픔에 몸서리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정말 끝을 마주하게 되면, 사랑의 깊이만큼 절망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던 ‘끝’에 대한 불안의 종식, 안도감을 맛본다.
작가는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정확하게 잡아내 책 속 캐릭터들에게 부여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를, 둘 중 누구 하나 결단을 내리지 못해 결국 낳게 된 아이에게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을 느껴본 헤롤드는 키우는 내내 아이가 잘못될까, 불안해한다. 그리고 결국 아이를 잃었을 때, 그때 느끼는 절망 속 묘한 해방감은 그를 더 괴롭게 한다. 가장 쉽게 말하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것, 나를 가장 괴롭게 할 수 있는 것도 결국엔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믿어보게 된다. 늘 다시금 일어나 시도한다. 그 전 관계에서 배반을 당해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았더라도, 우리는 늘 어쩔 수 없이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나 누군가를 믿어본다. 어릴 적 어른에 대한 신뢰가 늘 배반으로 돌아오는 잔인한 학습을 당해야 했던 주드도, 사랑하는 아이를 희귀병으로 잃었던 헤롤드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새로운 관계에 희망과 믿음을 부여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혼자서는 얼마나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인지, 끝없이 시도하고, 절망하고, 사랑한다.
결국 예견된 미래에 오차는 없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못했다. 주드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본인이 더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이 있지 않았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결과는 같을지언정, 주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세상에 대한 믿음은 분명 달라져 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모든 믿음의 배신과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사이에서도 주드를 사랑하고, 그의 트라우마를 어루만져주며 아껴준 사람들 덕에 조금은 더 행복한 기억을 품고, 괴로운 기억으로부터 조금은 더 멀어진 채로 삶을 마무리했다고 난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꾸준히, 무서워도 서로를 사랑하고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