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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May 14. 2024

붓과 물감

아이패드가 따라할 수 없는 질감

약 3년 전, 새로 출시된 아이패드를 살 때의 결심은 이러했다: “이걸로 넷플릭스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노트도 써야지!” 그림과 노트 필기를 위해 펜슬도 당연히 구매했다. 하지만 보안 사유로 회사에선 개인 전자기기 사용에 제한이 있고, 유료 구매한 그림 앱은 방치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결국 내 새 아이패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전용이 되었다.


최근 몇 년간 출시된 아이패드들은 뛰어난 센서들을 탑재해 펜슬의 기울기나 필압 등을 감지, 그림에 반영해 준다. 여러 기능을 활용하면 실제 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더 섬세한 터치가 가능해서 요즘은 많은 작가들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내가 쓰지 않을(못할) 기능이 더 많아진 것일 뿐,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내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게끔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초록색의 물감을 섞어 써보는 걸 좋아한다.

호기롭게 마음을 먹고 앱까지 구매했는데, 왜 결국 아이패드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인 것 같다. 2차원인 평면에 그리는 그림에 “입체감”을 논하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물감이나 파스텔의 피그먼트 일부가 종이 위에 쌓여 만들어지는 입체감이 분명히 있다. 아이패드가 화면에 그걸 “재현”한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 실제 두께와 질감을 만들어내주지는 않는 게 못내 아쉬워졌다.

초보는 한 그림에도 이 색깔 저 색깔, 이 붓 저 붓을 다 써본다

결국 다시금 서랍에서 물감과 붓을 꺼내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종이마다 묘하게 다른 결감과 그 사이를 채우는 물감이 좋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재료는 오일파스텔과 과슈이다. 이런 밀도 높은 재료들은 투명한 수채화와는 달리 초보자의 실수에 조금 더 관대하다. 나와 같이 실력은 없고 욕심만 과한 아마추어에게 수채화는 욕심을 내 덧바르다 종이가 울거나 색상이 텁텁해지는 일이 일상이라 덧바르기 좋은 과슈가 딱이다. 그림을 망칠 부담 없이 붓을 물에 적셔 과슈 물감을 소량 풀어내 그림을 그릴 때면, 종이 위에 사락하고 스치는 소리와 감촉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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